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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유류세 인하 검토 안 한다더니 사흘 만에 뒤집은 기재부

등록 2021.10.21 14:58

수정 2021.10.21 16:56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유류세 인하 방안을 검토한 바 없음"

며칠 전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해명자료의 요지입니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불과 며칠 만에 이 말을 정반대로 뒤집어 버립니다. 유류세를 인하한다는 것이죠. 결국 대범하게도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거짓말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 발리에서 생긴 일

2018년 10월,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로 출장을 떠났습니다. 현지에서 기자 간담회 도중 폭탄 발언을 내놓습니다.

"유류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고 관계 부처와 협의 중입니다."

 

[취재후 Talk] 유류세 인하 검토 안 한다더니 사흘 만에 뒤집은 기재부
/ 김동연 前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당시 휘발유 가격이 ℓ당 1700원에 육박해 영세 소상공인과 서민들의 부담이 컸을 때였습니다. 출장 전 기자단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한 기재부 직원은 "이번에 발리에서 기사 확실한 거 하나 나옵니다. 꼭 신청하세요"라며 참석을 독려하기도 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유류세 인하'였던 것이죠.

한국에는 10월 14일 일요일에 기사가 풀렸고 많은 언론들이 이를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출장 후 한 기재부 직원은 "부총리가 유류세 인하로 뉴스 한 커트 따먹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 거듭된 부인, 그러나

요즘 주유소에 기름 넣으러 갔다가 놀라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ℓ당 1800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의 입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유류세 인하를 낮춰달라고 요구가 각계각층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10월 15일 금요일>
"유류세 인하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 없으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10월 17일 일요일>
"유류세 인하방안에 대해서는 검토한 바 없으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례적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서 동일한 해명자료를, 일요일까지 배포했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받아서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입장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 "유류세 인하는 내부적으로 검토"

 

[취재후 Talk] 유류세 인하 검토 안 한다더니 사흘 만에 뒤집은 기재부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답하고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입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정부의 구상을 묻는 질문에 홍 부총리는 냉큼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러 가지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현재 유류세 인하를 짚어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취재후 Talk] 유류세 인하 검토 안 한다더니 사흘 만에 뒤집은 기재부
/ 기획재정부가 배포한 해명자료


2번이나 거듭 이를 부인했던 기재부의 해명자료는 사흘 만에 종잇조각이 돼 버렸습니다. 왜 며칠 만에 입장이 바뀌었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홍 부총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류세 인하) 내용 확정 전 공개됐을 때 혼란을 감안해 내부적으로만 검토했습니다."

유류세가 오를 만큼 오를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유류세 인하를 결정하면서 빚어진 서민 부담, 유류세 인하를 놓고 급격하게 입장을 바꾼 점 때문에 빚어진 혼란은 일부러 감안하지 않았던 건지 이해가 쉽게 가지 않습니다.

■ 아마추어도 아니고

보통 정책의 내용이 사전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는 국익을 크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거나 외교적으로 큰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경우입니다. 유류세 인하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홍 부총리가 이를 깜짝 발표할 때까지 보안을 지켜 생색을 내자는 의도로 밖에 안 읽힙니다.

기획재정부는 중앙부처 내에서도 엘리트에 속하면서 기자들의 숫자도 가장 많아 언론 대응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류세 인하를 감추고 싶었다면 거짓 해명자료보다 아예 대응을 하지 않든지, 시장현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내용만 담았어도 충분했을 겁니다. 언론 해명자료는 언론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정부의 입장을 내놓는 통로입니다. 며칠 만에 이렇게 입장을 바꾸는 것은 언론과 국민을 상대하는 최악 중 최악의 방법입니다. 신생 부처도 하지 않을 아마추어적인 대응에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취재후 Talk] 유류세 인하 검토 안 한다더니 사흘 만에 뒤집은 기재부
기획재정부 외경 / 연합뉴스


■ 거짓말의 대가

이래선 정부에 대한 믿음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상화폐 과세를 놓고도 유예할 생각이 없냐고 질문에 홍 부총리는 '정책 일관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도 스케줄에 따라 과세하는 것이 맞습니다."

기업과 시장은 일관성이 떨어지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정책의 방향을 일관되게 간다고 믿어야 투자를 할지, 일자리를 만들지 등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자신의 말도 손바닥 뒤집 듯 말이 바뀐다면 정부 정책을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부 정책은 최소한의 보안만 유지하되 나머지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국민도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알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쇼 연출을 위해 진실과 사실을 가리고 거짓말만 하다가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으나 마나 한 정부만 남을 뿐입니다.

최악의 방사능 사고를 은폐하려다 역사상 최대의 피해를 남긴 해외 드라마 '체르노빌'의 첫 대사와 끝 대사를 정부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What is the cost of lies?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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