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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망치 들면 다 못으로 보이나

등록 2021.12.28 21:50

수정 2021.12.28 22:32

세계 열한 개 도시에서 종일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조각품입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작품이 가장 크지요. 노동의 숭고함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영화 '올드 보이'의 명장면, 장도리 격투신입니다. 망치도 흉기가 되니까 철없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맡겼다간 큰일 나지요. 그래서 나온 게 "어린애가 망치를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망치의 법칙' 입니다. 권력이라는 망치를 쥐면 닥치는 대로 두드려댄다는 경고입니다.

시인은 어릴 적 뒹굴던 온돌방을 냄새로 기억합니다.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말린 호박씨는 고소한 주전부리였습니다. 남몰래 먹느라 껍질 깔 새도 없이 털어 넣곤 했지요. 그러면 나중에 껍질만 배설되는 걸 가리켜 '뒤로 호박씨 깐다'고 했습니다. '겉으론 점잖은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짓을 다한다'는 속담입니다.

공수처가 벌인 것으로 드러난 통화 뒷조사가, 줄줄이 호박씨 까듯 2백여 명, 3백여 차례까지 불어났습니다. 주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 법조인, 교수, 시민단체 관계자에 정치인까지 무차별로 통신기록을 들여다봤습니다.

지금까지 기자만 스물두 개 언론사, 백 이십여 명에 이르고 이성윤 검사장 '황제 조사'를 특종 보도한 TV조선 기자들은 어머니, 여동생, 친구까지 뒤졌습니다.

국민의힘은 원내대표, 정책위 의장을 비롯해 소속 의원 39명의 개인 정보가 털렸습니다. 하라는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엉성하게 하면서, 수사대상도 아닌 기자와 민간인의 동태를 두드려보는 망치질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몰랐던 겁니다.

공수처는 의혹이 전방위 민간사찰과 정치사찰로 번지자 "과거 수사관행을 답습하면서 논란을 빚게 돼 매우 유감" 이라고 했습니다. '유감(遺憾)'이란 "마음에 차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이 남아 있는 듯하다"는 뜻이지요.

사실, 잘못한 쪽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쪽이 해야 어울리는 말입니다. 과거 수사 관행이란 말도 가당치 않은 핑계입니다.

사람은 먹는 대로 눕니다. '숨어서 일을 꾸미는 속셈과 수작'을 가리키는 순우리말 '야로'를 부려봐야, 시간이 지나면 벗겨진 호박씨 껍데기 나오듯 다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공수처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안 하겠다면 이제 수사로 밝혀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12월 28일 앵커의 시선은 '망치 들면 다 못으로 보이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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