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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민주당 국회의장 출사표 뜯어보니 "의장 단어만 빼면 당대표 선거네!"

등록 2022.05.17 14:13

수정 2022.05.17 16:14

[취재후 Talk] 민주당 국회의장 출사표 뜯어보니 '의장 단어만 빼면 당대표 선거네!'

/ 조선일보DB

더불어민주당 내 국회의장 후보 경선이 4파전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현재(17일)까지 민주당에선 5선 김진표·이상민·조정식 의원과 4선 우상호 의원이 출사표를 냈다. 이날 오전 출마 선언을 공식화했던 김상희 부의장은 오후에 돌연 뜻을 접었다.

어찌됐든 전례 없는 '출마 러시'다. 통상 선수 높은 의원 중심으로 사실상 추대하는 분위기가 많았다면, 이번엔 당내 경선부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후보로 나선 의원들 출사표엔 남다른 비장함과 전운마저 느껴진다.

김진표 의원이 어제(16일)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친전엔 "국정 독주를 해나가는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견제하는 일이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사명이자 운명"이라고 쓰였다.

언론 환경 등 여건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국회와 국민을 믿고 응답하는 리더십으로 2년 뒤 총선, 다음 대선을 이기겠다며 "제 속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고 했다.

3,550자나 되는 이 편지엔 협치나 소통 같은 문구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우상호 의원은 첫 의장 도전장을 국회나 지역구, 자신의 SNS도 아닌 김어준 총수에게 가서 썼다. 그가 진행하는 tbs 라디오에서 첫 출사표를 낸 건데,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경기지사 출마 때 '검찰개혁 강행 처리' 1인 시위를 벌였던 조정식 의원도 낙마 뒤 의장 선거로 발길을 돌리면서 또다시 '전시(戰時)'를 운운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에서 민주당이 야당이 됐다. 전시엔 그에 걸맞은 단일대오가 필요하다"며 과거 의장석에 몸을 날렸던 자신의 경험을 꺼냈다.

"국회의장이 되더라도 민주당의 일원임을 잊지 않겠다"고 말해 사실상 중립 의사는 없음을 처음부터 시인했다.

첫 줄에서부터 협치를 꺼낸 사람은 당내 소신파로 불리는 이상민 의원이 유일하다.

"이쯤하면 이들이 도전한 게 국회의장인지, 아니면 당 대표나 원내대표 선거인지 헷갈린다"는 말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국회 무시'는 '민주당 무시', '국민의 눈높이'는 '당원의 눈높이'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야당이지만 거대 의석을 보유 중인 민주당의 현주소와 맥이 닿아 있다. 한쪽 정당만 의식해 노골적 선거운동을 벌여도, 당락을 결정짓는 데엔 문제가 없어서다.

오히려 이들을 외면했다간 더 큰 봉변에 직면할 수 있어 감당이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지난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최강욱 의원을 밀며 세력을 과시했던 강성 의원 모임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의 발언이 압권이다.

김 의원은 차기 국회의장 선거가 다음 주라며 "(국회의장이) 무리하게 합의를 강요한다면 자신의 명예를 권리로 사용한 것이고 권한 남용이 된다"고 했다. 여야 합의를 권한 남용으로 치부한 것이다.

"국회의장이 안건 상정권과 의사진행권을 자신의 치적을 위해 사용한다"거나 "권한 행사에 소신과 소명의식을 분명하게 보이라"는 등, 자신들의 표심을 선거 전 압박 카드로 활용했다.

유권자가 출마 후보에게 희망 사항을 건의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 중엔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를 보류시킨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GSGG'라고 욕설하거나,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 법사위를 무력화하는 데 동조한 의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소신과 소명이라 썼지만, 사실상 그들의 말, 또 그들을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의 말을 들으라는 협박처럼 보이는 이유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 협치가 빠졌다고 비판했던 게 불과 일주일 전이다.

그러나 정작 내 자리를 지키는 일 앞에선 손쉽게 말을 뒤집고, 그래도 거대 의석과 강성 당원이 만드는 패권에 안주할 수 있다는 이 '내로남불' 정치를 국민들은 이제 위태롭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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