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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낮고 어두운 곳으로

등록 2022.06.15 21:51

수정 2022.06.15 21:57

"사람에 대한 평가는, 실제로 어땠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기록됐느냐에 달렸지요" 

재클린 케네디는 자신의 장점, 특히 지적인 면을 한껏 드러내 보였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 '재키 룩'으로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아 요즘 말로 '완판'되곤 했지요. 그는 '쇼'가 아니라 진정한 '이미지 메이킹'이 뭔지 알았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내에게 시를 지어 바쳤습니다.

"엘리너는 빠지고 말았네. 슬프고 두려운 운명 속으로. 워싱턴의 아내들이 살아야 했던 그 끔찍한 삶 속으로…"

엘리너는 사생활을 잃는 게 두려웠지만 막상 백악관에 들어가자 가장 활발한 참여형 퍼스트 레이디가 됐지요. 그 반대편에 매미 아이젠하워, '레이디 버드' 존슨, 바버라 부시에 이르는 내조형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부인도 어느덧 열두 분입니다. 다소 튀는 분이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조용한 내조형이었습니다. '안방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의식했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경우이건 공인의 처신과 내조자의 다소곳함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김건희 여사는 여러모로 독특합니다. 첫 사업가 출신인데다가, 차림새마다 이목이 쏠리곤 합니다. '비호감' 논란을 의식해 대선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유례가 없습니다. 결국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배우자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을 없앤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런데 바깥 행보가 시작되면서 논란이 끊이질 않습니다. 부부의 주말 일상사진들이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공개된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제2부속실 역할을 팬클럽이 하는 격인데 사실 그 팬클럽이란게 어떤 것인지도 아는 국민이 많지 않습니다.

이른바 '팬덤 현상'이 근래 우리 정치판을 얼마나 거칠고 혼탁하게 뒤흔들고 있는지는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김 여사를 에워싼 팬덤도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팬클럽 운영자의 언행입니다.

대통령 취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시민단체니 후원금이니 하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비판하는 사람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부을 수가 있습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억울해하는 것 이해합니다만, 자신의 행동이 결국 대통령에게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듯 합니다.

대통령 부인이 현실적으로 내조에만 머물 수 없다면 공적 지위에 맞는 합리적 관리체제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적 활동이라고 내세워도 국민은 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선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지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시절이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부인의 화려한 패션이 아니라 낮은 곳 아픈 곳을 향한 따뜻한 손길을 기대할 겁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강한 야당의 역할도 말이지요.

6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낮고 어두운 곳으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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