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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알아서 긴 대가

등록 2022.06.27 21:50

수정 2022.06.27 22:34

"친구들과 함께 내게 경의를 표하게. 내 부리를 조금 적셔달란 말이야"

백 년 전 이탈리아 사람들이 살던 뉴욕 이민촌에서, 이 악당은 가난한 동족을 착취하며 군림합니다. 그의 위세에 눌려 사람들은 알아서 기곤 하지요. 하지만 젊은 대부만은 비굴한 복종을 거부합니다.

'알아서 긴다'는 말을 국어사전은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부가 내리기 전에 미리 헤아려, 윗사람 뜻에 맞게 행동하거나 일을 처리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를 연출했던 시인 유하는, 폭력 앞에서 알아서 기는 자들을 관찰합니다.

"알아서 길 때 모든 게, 알아서 편리한 세상. 그러나… 왜 알아서 일어나지는 못할까. 왜 다들 끝내 지네처럼 기어 다니는 것일까"

3년 전 문재인 정부는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을 강제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북한의 공식 요청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아직도 왜 그랬을까 의구심이 남습니다.

정부 합동조사 사흘 만에 서둘러 송환을 통보했고 다음 날 북한이 보내라고 하자 또 하루 만에 북송했습니다. 그야말로 알아서 기었다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정부는 두 어민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포승에 묶어 판문점까지 데려갔습니다.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안대가 풀린 이들은 비로소 북한행을 깨닫고 털썩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송환 사실이 북송 직전에야 우연히 언론 취재로 알려졌을 정도로 은밀하고 전격적으로 처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문재인 정부는 두 어민이 동료들을 살해한 범죄자라는 점을 내세웠습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 해도 우리 법의 관할로 들어온 만큼 우리 정부가 먼저 조사하고 처벌하는 게 원칙이란건 두 번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과거 끔찍한 선상 살인을 저지른 조선족 선원들을 변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이렇게 말했다지요.

"동포들이 조국에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데 따듯하게 품어줘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하필, 김정은 위원장을 부산 정상회의에 초청하는 대통령 친서를 보내면서, 북송을 함께 통보한 사실도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뭔가 의문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저뿐인지요?

시인은 알아서 기는 자들에게서, 약자를 짓밟는 행태를 보았습니다. "그토록 처절하게 알아서 기는 일도, 결국 남을 밟고 우뚝 서기 위한 것"이라고…

어민 강제 북송과 이대준 씨 서해 피살은 일맥 상통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조지훈은 '지조론'에서 "가련한 아첨이란, 몸을 굽혀 발을 핥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굴종에 빠지면 사람이든 나라든 영영 허리를 펴지 못하는 법입니다.

6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알아서 긴 대가'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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