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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만 5세' 뭇매 맞고 또 '남침' 논란…나사 풀린 교육부

등록 2022.08.31 18:28

수정 2022.08.31 18:45

[취재후 Talk] '만 5세' 뭇매 맞고 또 '남침' 논란…나사 풀린 교육부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이 31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 교육과정 한국사 시안에 '6·25 남침', '자유' 등의 표현이 빠진것과 관련한 설명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만 5세 입학'은 현실적으로 추진이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 (지난 9일)

"'남침'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국민적 우려가 제기된 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 (31일)

교육부가 또 사과했다. 3주 만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사전논의도 없이 발표했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은 학부모와 교원단체 분노를 폭발하게 했다. 느닷없는 정책에 보수 단체마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온라인 상에선 "그동안 해내지 못한 국민대통합을 교육부가 이뤄냈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이번엔 '남침' 논란이다. 2025년부터 중학생·고등학생이 배우게 될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에 '남침', '자유민주주의' 용어가 빠진 채 공개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꾸려진 정책 연구진이 만든 시안을 별다른 검수과정 없이 공개한 것이 화근이 됐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3번이나 외쳤던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가 맞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박순애 말릴 두번의 기회에 뒷짐만 진 관료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8일 학제 개편안 논란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취임 34일 만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만 5세 입학'은 박 전 장관이 단독으로 추진해 사고를 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를 말리지 않고 방관한 교육부 관료들 탓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 5세 입학'은 이전 정부 때도 추진됐다가 폐기 됐을만큼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이다. 교육부 관료들만큼 이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아마추어 장관의 졸속 추진에 제동을 건 관료는 없었다.

당시 교육부 관료들은 박 전 장관을 두 번 말릴 기회가 있었다. 처음 업무보고 자료를 만들 때 고언을 할 수 있었다. 또, 교육부 업무보고 자료를 미리 받아본 대통령실에서 "만 5세 입학은 업무보고에서 빼라"고 지시한 뒤에도 만류할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 업무보고 전 교육부 자료를 보고받고, '만 5세 입학은 공약에도 국정과제에도 없는 사안이니 빼라'고 했지만, 몇일 뒤 다시 올라온 보고에도 또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박 전 장관은 논란이 커진 뒤에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일주일 넘게 자리를 지켰다. 그 사이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폭락했다. 정권 초반임에도 눈치보기와 복지부동으로 일관한 교육부 관료들이 윤 정부에게 큰 부담을 안긴 셈이다.

◆尹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한 '자유'는 어디로

교육부가 30일 공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한국사 공통 교육과정 시안에는 '6·25 전쟁'과 관련해 '남침'이라는 표현이 빠져있다.

동일한 논란은 4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교육부의 교육과정 시안 공개 후에도 '남침' 표현이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언론 보도를 통해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교육부는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이란 표현을 넣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2018년 교육과정에서는 집필기준에 '자유'를 빼고 그냥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썼다. "인민민주주의도 용인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고, 결국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넣었다. 그런데 2022 교육과정 시안에선 다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사라졌다. '민주주의의 시련', '민주주의의 발전' 등으로만 표현됐다.

같은 논란이 4년 만에 반복됐다. 그것도 정권교체를 이룬 윤석열 정부에서 나왔다. 당선 기자회견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윤 대통령의 의지가 무색해졌다.

교육부는 문제가 커지자 이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 브리핑'을 열었다. '4년 전 제기됐던 논란을 예상 못했나'는 질문에 교육부 관계자는 "검토, 보완해 나가겠다"고 했다.

기자가 '내가 한 질문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 아니였냐는 것'이라고 재차 물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또 "의견 수렴을 통해 조정하겠다"고 했다.

3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논란을 알고 있었을 텐데, 시안일 뿐이란 답변은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그제야 "우려가 제기된 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전에 (남침, 자유가 빠진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남침', '자유' 표현의 삽입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교육부가 윤석열 정부 기조와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권 일각에선 "이러니 교육부 폐지론이 주기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한탄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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