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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입지 줄어드는 문과생들…전공 장벽 허물 수 없나?

등록 2022.12.16 17:49

수정 2022.12.16 19:25

문·이과 간 입시와 취업 양극화가 심각해서 전공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내용의 기획 기사를 지난 10일 보도했다.

[뉴스7/리포트]"문송합니다"…수능도 취업도 문·이과 양극화 갈수록 '뚜렷' (https://n.news.naver.com/article/448/0000386054?ntype=RANKING)

리포트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여기서 더 풀어쓴다.

■입시부터 문과생에게 절대적으로 불리

현재 수능 제도의 변화로 지난해부터 문·이과 칸막이가 없어졌다. 원칙적으로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한 학생도 대학 학과는 이공계열 학과 지망이 가능하고, 이과를 선택한 학생도 대학 학과는 문과 계열 지망이 가능하다. 이른바 '교차 지원'이 가능한 셈이다.

얼핏 들어보면 좋은 입시 제도인데, 안타깝게도 문과를 선택한 고등학생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공계 학과(컴퓨터공학 등)에서는 수학 미적분과 과탐을 응시한 수험생들게만 원서 접수를 허용하게 하는 반면, 문과 계열 학과는 별도로 응시과목 제한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과 학생들은 이과 학생들의 교차 지원으로 인해 더 높은 경쟁에 노출되고, 이과 계열로 지원을 하고 싶어도 응시과목 제한으로 교차 지원을 하지 못 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이과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취재진이 종로학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요 일반고에서 문과를 선택한 비율은 33.5%에 불과했고, 이과 선택은 66.5%에 달했다. 8년 전 문과 선택 49.5%, 이과 선택 50.5%에 비하면 이과 선택이 16%p 증가했다.

자사고만 놓고 보면 이과 쏠림이 더 심각하다. 서울소재 지역 자사고 기준으로 이과 선택 비율은 68.6%였고, 지방 소재 지역자사고의 경우 81.6%에 달했다.

또 지난해 서울대 일반전형 합격자 중 모집인원 비율은 인문 38.5%, 자연 61.5%였지만 실제 합격자 숫자는 인문은 20.8%, 자연은 79.2%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과 학생들만 놓고 보면 서울 최상위권 대학의 경영학과를 갈 것인가, 아니면 서울 10위권 대학의 이공 계열로 진학할지 행복한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이과에서 문과로 넘어오는 건 대학 간판을 우선순위로 두기 때문이라며 현행 입시 제도가 유지되는 한 이과의 문과 침공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최상위권 문과 학생들은 의대, 치대 등에 원서도 넣지 못하고 이과 계열에서 넘어오는 학생들 때문에 과거처럼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더라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제 문과는 문과라는 사실만으로 대학 입시에서 큰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문과생, 입학해도 문제…취업서도 설 자리 줄어

 

[취재후 Talk] 입지 줄어드는 문과생들…전공 장벽 허물 수 없나?
 


이른바 '문과생'들은 입시의 불이익을 극복하고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4년 뒤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지 않는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문송합니다)'를 넘어서 '인문계의 90%가 논다(인구론)'라는 자조적인 신조어를 극복해야 한다. 실제 현실도 문과생들에게 엄혹하다.

2020년 기준으로 대졸자 인문계열 취업률은 53.5%에 불과했지만, 공학계열은 67.7%에 달했다. 코로나19로 문과생 고용률은 6.1%p 크게 하락했고, 지난해에도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반면 이공계열 고용률은 코로나19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특히 공무원시험 인기가 식은 후 문과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 채용을 분석해도 인문 계열에 호의적이지 않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대기업 채용계획 인원 중 이공계열이 67.9%에 달하고, 인문 계열은 30.8%에 불과하다.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다시 시작한 삼성그룹만 놓고 보면 삼성의 전체 채용인원 중 인문계 TO는 대략 20% 내외로 알려졌다. 그룹 내에서 압도적인 매출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전체 채용의 80%)에서 인문/상경계 TO는 약 10% 정도로 추정된다.

이처럼 경영, 경제 등 상경 계열을 비롯해 철학, 어학, 역사 등 비상경 계열 등 문과계열 전공자들이 취업문을 뚫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반면 이공계 졸업생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서울의 한 주요 대학 소프트웨어학과의 경우 지난해 취업률이 83%에 달했다. 인터뷰에 응한 해당 학과의 재학생들은 취업 고민보다는 더 좋은 직장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이 앞선다.

또 일부 IT 기업에서 먼저 졸업예정자들에게 접촉해서 일자리를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좋은 인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불고 있는 것인데, 문과생들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취업 양극화로 이공계열 복수전공 열풍…경쟁 과열

이처럼 문, 이과 간 취업 양극화가 심해지자 문과 계열의 학생들은 취업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이공계열로 복수전공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취재진이 접촉한 수많은 현직 대학생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높은 경쟁률 때문에 학점 커트라인에 걸려서 복수전공 신청을 해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공계열로 복수전공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차서 대부분 사설 강의에 의존한다. C, D 학점을 받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또 문과생의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서 문과 계열 중에서 상대적으로 취업이 잘 되는 상경 계열로 복수전공하는 것도 최근에 어려워졌다. 서울대의 경우 주전공에서 학점 4.3 만점 중에 4.1을 넘어도 경영학과 복수전공에서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서울권 대학이 모두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허소은 성균관대 인문사회계열 학부생(20)은 "어문계열을 주전공 하는 경우 특히 상경 계열 복수전공을 위해 경쟁이 붙고 있다"면서 "경영, 컴퓨터공학 복수전공을 위해선 학점 4.0을 넘어야 하고, 학점에 따라서 선택의 폭이 줄기 때문에 다들 학점을 잘 받으려고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전공 장벽 허물어야"…쉽지 않지만 필요한 과제

문·이과 통합수능을 치르고 있는데 정작 대학에서는 문, 이과를 나눠서 뽑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나고 비효율적이다.

또 교차지원을 통해 통섭형,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려는 통합수능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율이 50%로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심각한 상황에서, 산업과 기술 변화에 맞게 전공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대학 지원시 의대 등 특수 전공을 제외하고 전공을 결정하지 않고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1, 2학년때 문, 이과 구분 없이 자유롭게 전공 과목을 들어본 이후에 3, 4학년때 본격적으로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프린스턴대학의 경우 1학년때 전공 없이 수업을 듣고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필수 이수과목만 채우면 전공 변경도 가능하다.

하버드대학도 대부분의 경우 1, 2학년때 문·이과 전공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수강하다가 2학년 가을학기때 전공을 결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은 대학 입학 후 3년 이내 전과하는 학생의 비율도 33%에 달한다. 사실상 전공 장벽이 없고,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전과가 매우 어렵고, 복수전공도 문턱이 높다. 고등학교 때 선택한 전공으로 대학 4년을 그대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같은 높은 전공 장벽으로는 문·이과 간 입시, 취업 양극화 해소가 어렵고, 더 나아가 기술적 진보와 사회 변화에 호응한 좋은 인재 양성도 어렵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창의성과 융, 복합적 문제해결능력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과 산업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공 운영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위원은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인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한 고등교육 변화가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공 장벽을 허무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우선 전공 장벽이 허물어지면 정원이 증가하는 학과와 감소하는 학과 간 이해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문 계열, 특히 비상경 계열의 정원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해당 학과의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대거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산업중심 정원 조정과 사회 변화에 맞는 인재 선발이 대학의 주요 목적과 기능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의 의지도 관건이다. 교육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반도체학과 신설에 걸림돌이 되는 '수도권 정원 규제'를 풀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해서 법제처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전공 장벽 허물기와 전공 인원 조정은 각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손을 놓고 있다.

물론 대학 자율성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교육부 등 유관부처에서 대학이 전공별 정원 제약을 없애는데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전공 장벽을 허무는 대학에게 재정 지원을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 요체…교육개혁 '주목'

 

[취재후 Talk] 입지 줄어드는 문과생들…전공 장벽 허물 수 없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좋은 인재를 많이 양성할 수 있는 교육개혁을 강조했다. 또 고등교육은 국가 경쟁력의 요체라고 발언했다.

교육 개혁은 단순히 입시 제도를 손보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 제도는 국가 산업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국가 경쟁력과 연결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국가 개혁 과제이다.

대한민국 광복 이후 수십 년간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문, 이과 계열을 구분하는 현행 대학 전공 운영 시스템에 대대적인 개혁과 수술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서울대는 벌써 중장기 발전계획 보고서를 통해 '신입생 무전공 선발'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전공을 미리 정해서 입학하는 현행 시스템을 완전히 없애고, 문·이과 구분 없이 선발한 후에 나중에 전공을 정하는 입학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제 서울대의 논의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여러 대학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노력을 강조하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공과 직업 간 높은 미스매치를 낮추고 극심한 전공별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해결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문·이과 장벽 허물기 논의가 보다 뜨겁게 이루어지고 변화가 생기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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