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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 관련, '불편한 진실' 다섯 가지

등록 2022.12.28 18:23

수정 2022.12.28 22:01

[취재후 Talk]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 관련, '불편한 진실' 다섯 가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최근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각종 전세사기 사건 관련,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미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을 비롯해, 더 이상 사기에 휘말리는 세입자가 없도록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상당한데요.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그럼에도 마음이 쓰이는 이른바 '불편한 진실' 다섯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불편한 진실1] "집주인 체납 여부 확인은 계약 이후에나 가능한 것 아닌가요?"

지난 23일 국회에서 세입자 권리 강화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면서, 내년 4월부터는 집주인 동의 없이도 미납한 세금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가까운 세무서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된 건데, 이는 임대차 계약을 한 직후부터 가능합니다.

바꿔 말하면, 계약 이전에는 관련 내용을 내년 4월 이후에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유명무실한 법 아니냐. 계약하기 전부터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곳곳에서 요구하고 있는데요.

개인 정보보호 관련 내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진만 있을 뿐 후진은 없다'는 기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계약 이전에도 체납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계약이 최종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거짓으로 '계약하겠다'고 밝힌 뒤 개인 정보만 확인하는 악용 사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국토부는 다음 달 전세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앱을 내놓을 예정인데요. 앱에 해당 주택의 적정 전세가와 매매가 수준, 보증보험 가입 여부, 불법·무허가 건축물 정보 등이 제공됩니다.

이러한 정보를 한 곳에 모아두고, 세입자가 직접 위험 거래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전에 비해 크게 진일보한 정책인데요, 이 역시도 한계는 있습니다.

계약 이후 정보공개와 전세사기 방지용 앱 등을 종합 활용해 '무자본 갭투자'로 집을 사모으는 이른바 '빌라왕'들과의 후속 계약은 피할 수 있지만, '무자본 갭투자'가 단 한 채였다면 그야말로 운에 맡겨야 하는 셈이죠.

■[불편한 진실2]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알지만, 보증금이 싸다고 하니…"

취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이하 HUG)에 보증 보험을 가입한 분들과 그렇지 못한 분들로요.

두 그룹의 분위기는 크게 달랐습니다. 보험에 가입한 분들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거의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반면, 미가입자 분들은 보증금의 상당 부분을 개인 피해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미가입자 가운데 보증보험 제도를 몰랐거나 집주인이 회피해 가입하지 못 한 분들도 있었지만, 피해 가능성을 알면서도 가입하지 않은 채 계약한 분들도 꽤 계셨습니다.

"몇 천만 원 싸게 나온 물건이 있는데, 우리도 보험 가입을 해서 보전해줄 수 있으니 믿고 계약하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에 현혹돼 계약했다는 피해자도 있었고요.

국토부와 HUG 측에서 미진한 제도를 개선해야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제도를 잘 갖추고 있어도 '보증금이 부족한 분들'을 악용하는 사기꾼들과 사기 가능성을 미리 판별해내야 하는 중개업자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는 병행돼야 할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3] "확정일 늦춰주면 천만 원 이상 싸게 해준다는 통에…"

국회에서 지난 23일 관련법을 처리해, 내년부터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체납 세금 징수에 앞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먼저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세입자가 부동산 확정일자를 받았다면, 보증금은 그 이후 발생한 세금 보다 우선 변제받도록 한 겁니다.

다만 계약 이전에 집주인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면, 세입자 보증금 보다 우선 변제됩니다.

여기에 함정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1천만 원 이상 싸게 해주겠다"며 "확정일을 며칠 늦춰줄 수 없느냐"는 현혹에, 자금 사정이 어려운 분들은 이를 쉽게 뿌리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애초에 계약 관련 서류가 금융권으로 넘어간 이후엔 추가 대출 자체를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지만, 그렇게 되면 돈을 돌려줄 의지가 있는 집주인까지도 대출이 막혀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볼 때, 이 역시도 속시원한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자금 사정이 부족한 분들이, 사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구조를 일거에 개선하기가 어렵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불편한 진실4] "'동시진행'에 당했습니다. 이거 앞으로 막을 수 있나요?"

전세사기 피해자들 상당수는 이른바 '동시진행 수법'에 당했다고 전했습니다. 동시진행 수법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매매대금으로 이용하려 임대차 계약을 먼저 맺고, 세입자 보증금을 바탕으로 동시에 매매를 진행하는 방식인데요.

특히 30세대 미만 건물은 준공일 이전에 매매계약을 체결할 경우 거래계약 신고 대상이 아닌 점을 악용해, 매매일자를 준공일 이전으로 소급 작성해 세입자들이 건물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하는 수법입니다.

정부는 동시진행 사기 관련해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보겠다고 했는데, 이 역시도 사기 당할 여지를 100%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류를 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세입자 입장에서 정부가 내놓는 대책에만 기댈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불편한 진실5] "시간이 걸리겠지만 HUG 통해서 지원을 해드리고…"

정부는 빌라왕 피해자들 가운데 HUG 보증보험에 가입한 분들에겐, "조금만 기다려달라. 결국엔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안심하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HUG에서 대신 지불하는 것도 결국은 국민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여지를 남깁니다.

문제는 HUG의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 대비 보증금액 비율(보증배수)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2024년에는 법정 한도(60배)를 초과할 가능성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HUG 입장에서도 점차 '보수적 집행'을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죠.

HUG의 보증배수는 지난해 49.2배에서, 올해 9월 기준으로 52.2배로 상승했습니다. 내년엔 법정 한도의 턱밑(59.7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데 이 역시도 각종 빌라왕 사건이 터지기 전 추정치라 일각에선 내년에 한도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을 내놓습니다. 계약 기간이 아직 종료되지 않는 HUG 가입자들, 새롭게 가입해야하는 분들 모두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글을 마치며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작정하고 '사기치겠다'고 달려드는 분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이 안타깝게도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가 적은 분들과 맞물리는 지점이 더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부의 각종 대책으로 사기 당할 가능성은 줄어들 수 있지만 사기 행각을 박멸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결국 세입자 분들이 주위의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하나 차분하게 따져가면서 계약을 해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추세적으로 전셋값 하락세가 뚜렷해질수록, 보증금 미반환 관련 분쟁도 덩달아 증가했습니다.

올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5.23%를 기록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 이후 가장 크게 하락했습니다. 전세수급지수도 올해 7월까지만 해도 91.3이었는데, 지난달엔 67.1로 떨어졌습니다. 내년에는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요.

부동산 시장 여건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각종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각자가 보다 보수적으로 신중하고 현명하게 판단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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