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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높고 고통스러운 고금리, 과연 언제까지 갈까

등록 2023.01.14 15:30

수정 2023.01.14 18:14

[취재후 Talk] 높고 고통스러운 고금리, 과연 언제까지 갈까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연합뉴스

"수시로 연방준비제도 본부 주변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내 집무실 주변에는 각목 무더기가 쌓이기도 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 미 연준 전 의장(1979~1987 재임)이 본인의 저서 '달러의 부활(원제 Changing Fortunes)'에서 꺼내놓은 일화입니다.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처치하기 위해 볼커 의장은 전무후무한 통화 긴축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금리는 20%대까지 치솟았습니다. 오죽하면 다른 나라 정상들로부터 "그리스도 탄생 이후 가장 높은 실질금리"라는 원망을 들었다고 합니다.

볼커 의장은 1982년이 돼서야 통화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몇 달만이라도 경기침체를 앞서서 끝낼 수 있었는데, 때가 너무 늦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우리가 긴축정책을 충분히 끌고 가지 않아 대중들의 근본 행태를 바꾸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주저앉히지 않았더라면 더 큰 실책이 됐을 것이다"라고요.


Q. 그런데 먼저, 긴축 정책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떨어트려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물가가 치솟으면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연 2% 인지 말이죠. 한국은행도 2019년 이후 물가안정목표를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대비) 2%로 잡고 있습니다. 그보다 적거나 높으면 왜 안 된다는 걸까요.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가 상승률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고용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물가와 경제성장은 서로 얽혀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상품이 지금 100만원에 팔리는데, 이후로도 값이 동일하다고 예측되면 소비자들은 굳이 현재 소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가격이 오를 걸로 예측되면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은 구매를 서두를 겁니다. 늦게 사면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니까요. 이렇듯 물가의 상승은 소비를 현재로 앞당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물가 상승은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지출이 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듭니다.

김밥 한 줄에 3100원인 시대입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기준으로 대표적인 외식품목 8개의 평균 가격이 작년 1월과 비교해 많게는 13.8%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우리 소득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물가의 상승은 특히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서민과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결국 소비를 적정하게 촉진하면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가 현재로선 연 2%라는 계산입니다.

볼커 의장은 자신이 고강도 긴축 통화정책에 진심이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경제는 합리적인 물가안정 환경 속에서 더 효율적으로 보다 공정하게 더 잘 작동해, 더 나은 미래에 더 많은 저축을 하는 날이 올 것이란 단순한 확신이 있었다고요.


그럼 세계 각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미국의 지난해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연 9.1%였습니다. 지난해 12월엔 6.5%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목표치보다 훨씬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5.1%로 집계됐습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 잡기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Q. 그럼 고금리는 언제까지 갈까요?


"그 어느 위원도 2023년 내 금리 인하가 적절하다고 보지 않는다."

"물가상승률이 2% 수준으로 확실히 수렴해 간다는 확신이 있기 전엔 금리 인하를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2022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담긴 말입니다. 표현만 보면 최소한 올해 안으로는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두 번째는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이창용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확신'이 언제 어떻게 드는진 몰라도, 어쨌든 당분간은 금리가 낮아질 것 같진 않습니다.


정리하면, 연간 물가상승률이 2%를 향해 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중앙은행들은 충분히 제약적인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겁니다.


중앙은행 수장들은 이런 교훈을 과거로부터 얻었습니다. 흔히 아서 번즈 연준 의장(1970~1978 재임)을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반면교사로 삼습니다. 친구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통화정책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죠.

볼커 의장은 저서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1970년 초부터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자 새 의장 아서 번즈가 이끄는 연준의 통화 정책이 완화됐다."

"닉슨 대통령의 연임이 막 시작되던 때 물가 및 임금 통제를 일거에 해제하는 다소 급작스럽고 무모한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인들 중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나중에 내가 번즈의 자리를 맡게 됐을 때 그 인플레이션은 나의 최대 도전과제가 됐다."

매번 매파(긴축 지향) 발언을 쏟아내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도 한때 아서 번즈 같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물가가 올라오는데도 "일시적"이라고 치부하는 바람에 조기 해결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 정신을 다잡죠. 초유의 4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연 4.5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아서 번즈보다는 폴 볼커로 역사에 남고픈 겁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12월 FOMC에서 19명의 위원들은 최종 금리가 5.1%까지 올라갈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예측은 다양하지만, 회의록 내용으로만 보면 앞으로 한두 번 금리가 더 오를 수 있습니다.


물론 최근엔 금리 인상기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상기한 대로 지난달 미국의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YoY)이 계속해서 둔화되고 있고, 월간(MoM)으로는 물가가 0.1% 포인트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한은 금통위 위원들 중 총재를 뺀 절반이 최종금리를 현재와 동일한 3.50%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갑자기 매파에서 비둘기파(완화 지향)로 돌아서긴 어렵습니다. 정책 의지를 확고히 표명해 대중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떨어트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향후 물가가 크게 오를 것 같다고 생각될 때 대중은 소비를 현재로 앞당긴다는 설명은 앞서했습니다.

현재 소비가 늘면, 즉 수요가 증가하면 재화의 가격을 밀어 올리게 됩니다.

또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에 증시가 오르는 것도 문제입니다. 증시가 오르면 투자자들의 자산이 불어나면서 소비가 늘고, 이는 물가 상방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결국 언젠가 금리는 떨어지겠지만, 그 시기를 섣불리 점치기는 어려운 이유입니다.

여기서 글 서두에 소개한 볼커 의장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해야겠습니다.


"우리가 긴축정책을 충분히 끌고 가지 않아 대중들의 근본 행태를 바꾸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주저앉히지 않았더라면 더 큰 실책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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