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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속죄, 용서 그리고 43년 만의 화해

등록 2023.01.18 21:50

수정 2023.01.18 22:03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건국사의 거인입니다. 연방정부의 기틀과 중앙은행을 세워 경제의 토대를 닦았고, 양당 정치의 한 축, 공화당의 시조로 꼽힙니다. 그를 시기하고 증오했던 부통령 에런 버가 그를 결투에 불러냈습니다.

권총 결투로 아들을 잃었던 그는 "첫 발을 빗나가게 쏘겠다"는 글을 남기고 나갔습니다. 그는 하늘로 총탄을 날렸고, 버의 총탄은 그의 척추에 박혔습니다. 해밀턴은 숨을 거두며 "버를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된 버는 정치생명이 끊겨 프랑스로 망명했고, 돌아와 어렵게 살다 떠났습니다.

그리고 2백년이 흐른 뒤 두 후손들이 모여 옛 결투를 재연했습니다. 해밀턴 추모공원에 버의 동판을 바치고 다채로운 행사를 함께했습니다. 오랜 앙금을 용서와 화해로 씻어냈습니다. 영국 속담에 "용서는 가장 고귀한 승리"라고 했습니다. 노자는 "원한을 덕으로 갚는다"고 했고, 공자는 "바름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했지요.

어제 5·18 민주화운동 3대 단체가 서울현충원을 찾아, 43년 전 진압 과정에서 숨진 계엄군과 경찰관 묘소에 처음으로 참배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묘비를 어루만졌습니다. 지켜보던 특전사 동지회 사람들과 순직 군경 유가족, 기자들까지 눈시울을 붉혀 눈물바다를 이뤘습니다.

5월 단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피해자"라고 했습니다. "5월의 아픔을 겪는 모두가 용서할 수 있도록 특전사동지회와 소통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듯 5·18 트라우마는 장병들에게도 깊이 남아 있습니다. 죄책감에 빠져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우울증,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종교의 힘으로 버티거나 술에 찌들어 살다, 가정 파탄이 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예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을 접한 희생자 유족들이 차츰 마음을 열면서 장병들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재작년 처음으로,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총격에 숨진 시민의 유족을 만나 사죄하고, 묘소를 눈물로 참배했습니다. 5·18 어머니회를 찾아와 머리 숙인 장병들을 어머니들이 용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엔 특전사동지회가 귤 상자를 들고 부상자회를 방문해 "5·18 진실 찾기에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속죄와 용서를 주고받는 행렬은, 어제 현충원까지 이어졌습니다. 상처를 서로 보듬고 치유하고 이겨내는 진실과 화해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호국 영령과 민주 영령의 슬픔을 함께 풀어가며 국민 대통합의 출발점이 되겠다"는 다짐이, 깊이 찢긴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1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속죄, 용서 그리고 43년 만의 화해'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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