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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반성이 필요한 시간

등록 2023.01.19 21:51

수정 2023.01.19 22:39

전남 강진 동문마을, 옛 주막 마당에 모녀의 동상이 있습니다. 2백여 년 전 주막을 꾸리던 손씨와 황씨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왔던 무렵이었지요.

그런데 강진 사람들은 다산을 냉대하고 피했습니다. 자기 집으로 찾아올까 봐 대문을 부수기까지 했습니다. 그 갈 곳 없던 다산에게 방을 내주고 정성껏 수발한 이가 손씨 모녀였습니다.

다산은 동상 뒤, 이 사의재에서 제자들을 기르며 방대한 저술을 시작했습니다. '폐족'이 돼버린 두 아들에게도 끊임없이 편지를 썼습니다. 폐족이란 '큰 죄를 지어 후손이 벼슬을 못하는 가문'을 뜻합니다.

다산은 폐족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글을 읽고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폐족끼리 어울려 다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폐족들은 서로 가엾이 여기기 마련이어서, 관계를 멀리 끊어버리지 못하고, 결국엔 함께 수렁에 빠지게 되니, 부디 마음에 새겨 다짐하라"고 했지요.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친문 인사들이 모여 '사의재'라는 정책포럼을 출범시켰습니다. "문 정부 정책이 일제히 부정당하고 있다. 근거 없는 비방과 왜곡을 바로잡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산의 유배지 거처 이름을 빌려 온 것 자체가 그리 적절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분들은 부동산, 소득주도성장, 탈원전처럼 낱낱이 실패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한 장본인들입니다. 나랏빚은 두 배 가까이 늘려 펑펑 쓰면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연금-노동- 교육 개혁은 손도 안 댔습니다.

북한 비위를 맞추느라 군 안보태세를 흐트러뜨리며 핵 개발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그래 놓고 이 정책들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합니다. 정책이 그렇게 훌륭했다면 20년 집권, 50년 집권을 호언장담했던 정권이 왜 5년도 못 버티고 주저앉았겠습니까.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한 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우리 친노는 폐족"이라고 했습니다. "10년 집권의 역사를 지키지 못했으니,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처지"라고 했지요 문재인 정부 2년 차를 마무리하는 토론회에서도 이미 폐족이 되지 말라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성장 같은 현실성 없는 경제정책에 비판이 쏟아지던 시점이었습니다. 한 토론자가 "지금 정신 안 차리면 제2의 폐족이 온다"고 했던 겁니다. 다산은 '사의재'라는 이름에 이 네 가지 다짐을 담았습니다.

'언행을 삼가라'는 가르침은, 폐족이 된 아들들에게 '몸가짐을 삼가라'는 당부로 이어졌습니다. "잊히고 싶다"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의 소망과도 통합니다.

문 정부 사람들은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부터 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지요. 당장 눈 앞만 내려 본다면 큰 길이 어디로 열려 있는지는 보일 리가 없을 겁니다.

1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반성이 필요한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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