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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등록 2023.01.24 17:42

수정 2023.02.08 17:23

아테네의 헤르메스상

그리스는 올림픽의 발상지다. 그리스 역사에서 연대가 정확히 적힌 최초의 사건이 바로 첫 올림픽이 서기전 776년에 열린 사건이었다. 그리스는 현대 올림픽이 최초로 열린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아테네의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는 한다. 바로 그 경기장에는 독특하게 생긴 석상이 하나 있다. 늙은 남자가 새겨진 면의 성기는 발기돼 있고, 젊은 남자가 새겨진 쪽의 성기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운동하면 늙어서도 활기찬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올림픽 경기장에 어울리는 해설을 동반하는 석상인데, 과거 한 여행 프로그램에서 최지우가 그 앞에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tvN '꽃보다 할배- 그리스 편'의 한 장면.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 내부에 있는 석상으로, 발기돼 있는 성기 때문에 최지우가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 석상의 늙은 얼굴은 제우스, 젊은 얼굴은 아폴론이라고 소개하기도 하는 모양이데, 실은 헤르메스다. 헤르메스를 흔히 전령의 신, 여행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이라고 하는데, 태생은 돌의 정령이다. 고대 사회에서 자주 목격되는 신성한 돌을 향한 숭배가 시작이었다. 마을 입구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기 마련이고, 등산길에 쉬면서 나지막한 돌탑을 쌓곤 하듯, 돌은 또한 경계의 표시이자 이정표이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은 그 돌무지 옆에 천하대장군을 세웠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돌기둥에 성기를 그려 넣었다. 풍요를 기원하는 몸짓이었다.

지도도 흔치 않던 고대의 여행객들에게 이정표만큼 중요한 표시도 없었을 테니 헤르메스는 여행자의 신이 되었다. 동네방네 싸돌아다니기로 말하면 전령과 상인이 제일이었을 테니,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 상업의 신이기도 했다. 고대에는 무역상과 해적의 경계가 모호했고, 상인과 도둑의 경계도 흐릿했다. 장사꾼이라면 흔히 거짓말과 속임수를 밥 먹듯이 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위증자, 도둑의 신이기도 했다. 후대에 만들어진 헤르메스는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날쌘돌이의 모습이지만, 고대의 헤르메스는 묵묵히 갈림길에 서서 길 안내를 하는 터줏대감의 모습이었다.

 

[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헤르메스상. 아고라박물관에서 촬영.


서기전 415년 이 헤르메스 석상 때문에 아테네 역사에 한바탕 큰 파란이 인다. 스파르타와 전쟁 중이던 아테네가 대규모 함대를 편성해 시칠리아 원정에 나서기 직전, 아테네 시내 곳곳에 세워진 헤르메스 석상이 훼손됐다. 아테네에서 시칠리아까지는 먼 길이고, 여행의 신인 헤르메스의 가호가 필요한데, 바로 그 헤르메스를 모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대인에게는 중대한 신성 모독이었다. 나아가, 원정 성공을 방해하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원정을 앞두고 꺼림칙한 사건이었다.

아테네는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범인을 찾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석상 훼손뿐 아니라 다른 신성 모독 사건이라도 신고하면 처벌을 면해준다는 조건도 걸었다. 사건의 진상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당대에도 정작 석상 훼손의 범인에 대한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신성모독 사건 신고가 들어왔다. 예전에도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 석상을 훼손한 적이 있고, 가정집에서 종교행사를 흉내 내기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 젊은이 중에 시칠리아 원정군 사령관 3명 중 1명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알키비아데스였다.

악동 알키비아데스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명문가 출신으로, 3살 때 아버지가 전사하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당대의 권력자 페리클레스의 후견 아래 보낸다. 하지만 후견인에게서 정치적 감각을 배웠을지는 몰라도 민주적인 태도는 배우지 못한 듯 보인다. 한번은 페리클레스가 시민들에게 보고할 정무 보고서를 작성하느라고 놀아줄 시간이 없다고 하자 “시민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될 방법을 연구하는 쪽이 차라리 낫겠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했고, 소크라테스에게 목숨을 빚지기도, 소크라테스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던 알키비아데스는 미소년으로 유명했다. 미소년만큼이나 난봉꾼으로도 유명했다. 세상 모두에게 구애를 받았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알키비아데스와 한 막사에서 같은 담요를 덮고 자고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의 명성이 더 높아질 정도였다.

알키비아데스는 돈 많은 방탕아로도 유명했다. 플라톤이 남긴 대화록에도 알키비아데스가 잔뜩 취해서 소크라테스의 ‘향연’에 난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알키비아데스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전차 경주에도 애착을 갖기도 했다. 올림픽 4두 전차 경주에 일곱 팀을 출전시켜 1, 2, 4위를 차지했다. 외국의 전차가 좋으니, 그 전차를 사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는 자기가 그 전차를 구입해 전차 경주에 참가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친구와의 우정이나 신의 따위는 개의치 않는 성격을 볼 수 있다.

 

[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청동 마부상. 델포이박물관 촬영. 서서 고삐를 잡는 것으로 봐서 마차가 아닌 전차를 끄는 모습이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철없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이미지가 알키비아데스를 위험에 빠뜨렸다. 당시 알키비아데스의 신성모독을 증언한 사람들은 노예와 외국인이었다. 증거는 없었다. 단순한 모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테네에는 ‘알키비아데스라면 그러고도 남지’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상황은 불리했다. 더구나 알키비아데스는 원정군 총사령관 중 한 명으로서 출전을 앞두고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승부수를 띄웠다. 출전하기 전에 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 ‘유죄로 밝혀지면 벌을 받고, 무죄방면되면 사령관직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중대한 문제로 고발당한 사람을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대군을 지휘하도록 파견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주장하며 시민들을 설득했다. 아테네의 재판에는 판사가 없다.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표가 유무죄를 갈랐다. 알키비아데스 휘하의 병사들이 재판을 유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있었다. 이미 출정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고대에는 전쟁 시기가 봄부터 가을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때는 한여름이었고, 꾸물거리다간 출정을 다음해로 미뤄야 할 수도 있었다. 이미 동맹국의 군대 지원까지 받아놓고 출정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은 알키비아데스를 전쟁터에 내보내고, 재판은 전쟁을 끝낸 후에 하자고 주장했다. 민회는 일단 출정을 하고, 재판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알키비아데스에게는 즉시 출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아테네 제국의 몰락

찜찜한 마음을 안고 알키비아데스는 시칠리아로 출정했다. 원정은 첫 단추부터 엇나가기 시작했지만, 알키비아데스는 차근차근 바로 잡아나가려 했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아테네에서 알키비아데스를 소환했다. 전쟁이 급하다며 재판도 미루고 출전시켰던 사령관을 전쟁 중에 재판받으라고 소환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파적 이익에 눈이 멀어 국익은 뒷전으로 밀려난 장면이다. 하지만, 소환장을 받은 알키비아데스는 더욱더 말이 안 되는 선택을 한다. 아테네로 송환되는 배에서 탈출해 적국 스파르타에 망명했다. 그리곤 시칠리아 원정에 대한 상세 정보를 넘기고, 기어이 아테네군이 시칠리아에서 전멸하도록 만들고 만다. 저 혼자 살겠다고 조국을 결딴낸 셈이다.

 

[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배심원단 추첨기. 아테네에서는 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배심원을 결정했다. 제비뽑기(추첨)은 신의 선택이라고 믿었기에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방식이라고 여겨졌다.

 
시칠리아 원정에 실패하고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은 10여년 더 이어졌다. 그러나 이미 승세는 기운 상태였다. 아테네가 10년을 더 버틴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에 국력을 남김없이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원정에 실패한 이유가 알키비아데스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알키비아데스가 책임의 상당 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에서도 한동안 검소한 생활을 하며 ‘우리 알키비아데스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을 듣지만, 오래지 않아 제 버릇 고치지 못하고 왕비와 간통 사건을 일으키고 만다. 쫓겨나다시피 페르시아로 간 다음에는 아테네로 금의환향하기 위해 잠시지만 아테네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결국 아테네로 돌아가는데 성공하지만 그 역시 잠시뿐, 다시 패장의 멍에를 쓰고 망명객의 신세가 되어 암살당하고 만다. 조국 아테네가 마침내 스파르타에 항복한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공멸이었다.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결정부터 최종 실패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지도자의 중요성과 함께 대중의 엇나간 열기가 갖는 위험성을 절감하게 된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거는 행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확인하게 된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내주는 사람은 바보라고 부를 수 있다. 호랑이한테 제 목을 맡기는 사람은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다면 끽해봤자 생선 한 마리 잃을 뿐이지만, 호랑이한테 제 목을 맡기면 자칫 목숨을 내놔야 할텐데?

이재명 대표와 알키비아데스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를 두고 ‘단일대오’를 외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보면 재판을 앞둔 사령관을 앞세우고 시칠리아 원정을 떠나는 아테네 선단이 떠오른다. “저로서는 문제될 만한 행동을 한 게 없기 때문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외치는 이재명 대표를 보면 출항하기 전에 재판을 받겠다고 나서는 알키비아데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만 이재명 대표가 알키비아데스만큼 ‘정면돌파’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말로만 ‘당당하다’고 해서 당당해지지 않는다. 알키비아데스도 결정적인 순간 아테네 시민들 앞에 나서 무죄를 호소하기보다는 스파르타로 망명을 선택했다. 비겁했고, 치졸했다. 이재명 대표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대장동 사건이든, 성남FC 사건이든,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불체포특권 뒤에 숨지 않는다면 이 대표가 말하는 ‘당당함’의 의미가 비로소 분명해진다. ‘문제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당당히 맞서겠다’는 말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고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를 판사 앞에서 무력화할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2023년 1월 10일 검찰 소환 당시 이재명 대표. 주변에 박홍근 원내대표, 정청래 최고위원 등이 병풍처럼 서 있다. /연합뉴스

 
역사의 기록만 보면, 알키비아데스는 확실히 억울할 만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예 통하지 않았을 황당한 모함이다. 원정군 사령관이 출전 직전에 재 뿌리는 짓을 할 턱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악동으로 유명한, 술버릇 고약하기로 악명 높은 알키비아데스였기에 황당한 모함은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재명 대표도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민간업자에게 수익을 몰아준 대장동 사업을 두고 본인 입으로 “내가 설계했다”고 자랑했고, 본인 입으로 ‘측근’이라고 부른 정진상, 김용 두 사람이 구속됐다. ‘문제될 일’은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표적수사’라고 할 만큼 ‘무관하다’고 주장할 형편은 못 된다.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할 사안이 많은데, 대장동 관련 질문만 나오면 입을 꾹 닫아버리니 과연 ‘당당한’ 태도가 맞나 싶다. 심지어 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대장동 관련 질문이 나올까봐 취소했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렇다 할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아테네 민회는 총사령관에게 사법 리스크를 씌운 채로 출정시키고, 전쟁 중인 총사령관을 재판받으라고 소환했다. 연속해서 최악의 선택이다. 민주당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의원에 공천해 뱃지를 달아준데 이어 대표까지 만들어줬다. 어쩌면 검찰 수사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니 ‘단일대오’를 외치는 건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최소한 전쟁 중에 총사령관을 소환하지는 않은 셈이다. 하지만 과연 혹시나 유죄가 드러나는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은 걸까? 최측근이 둘씩이나 구속됐는데, 이 모든 건 그저 검찰의 표적수사 때문이기만 할까?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 실패를 계기로 사실상 해상제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당초 알키비아데스가 제안했던 시칠리아 원정은 젊은이들의 ‘모험거리’였다. 하지만 평화론자인 니키아스가 원정에 반대하면서 ‘압도적인 병력 우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엉뚱하게 전쟁 규모를 키우고 말았다. 심지어 니키아스는 원정 도중 병 들어 철수를 희망하면서도 ‘병력 부족’을 핑계대는 바람에 병력 증원까지 받았다. 지더라도 별다른 타격이 없는 ‘모험거리’로 시작한 전쟁을 아테네 민회가 질 경우에는 나라가 망하는 ‘국운을 건 한판 승부’로 만들어버렸다.

이재명 대표가 받는 혐의는 대개 성남시장 시절 이뤄진 것들이다. 민주당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단일대오’를 외치며 ‘피의자’ 이재명 대표를 감싸는 순간, 민주당도 범죄와 더 이상 무관할 수 없다. 혹여 범죄가 확인되면, 민주당은 범죄를 감싸는 정당이 된다. 민주당은 당대표 얼굴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 사안을 당 간판을 내릴 수 있는 사안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당이라는 배는 아직 시칠리아의 전쟁터에 도착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배를 돌려 이재명 대표라는 또다른 알키비아데스를 아테네의 재판정에 내려주면 어떨까 싶다.

 

[아테네 이야기] 알키비아데스, 사법리스크를 안고 출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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