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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13년째 부유 중인 '돈 봉투 유령'…정치권에서 퇴치될까?

등록 2023.04.19 17:22

수정 2023.04.19 17:50

[취재후 Talk] 13년째 부유 중인 '돈 봉투 유령'…정치권에서 퇴치될까?

2021년 '돈 봉투' 논란이 된 민주당 로고(왼) 2008년 논란이 된 한나라당 로고(오)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13년 전 한나라당 닮은꼴?
2012년. 한나라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습니다. 15년째 쓰던 이름을 바꾼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때도 지켰던 당명인데 결국 '돈 봉투'에 무너졌습니다. 당시 박희태 국회의장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3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한 피고인 신분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였죠.

박 전 의장은 1·2심 재판에서 모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정치인에게 '집행유예'는 의원직을 잃게 되고 나아가 10년 넘게 선거에 나오지 못하는 중형입니다.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로 봐도 무방합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린 지 13년이 지난 2021년. '돈 봉투'는 전당대회에서 부유하는 유령같이 또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민주당입니다. 검찰이 2021년 송영길 전 대표가 당선된 전당대회에서 '300만 원 돈 봉투'가 최소 9400만 원 상당 살포된 정황을 잡은 겁니다. 검찰은 전달책으로 의심받는 민주당 윤관석, 이성만 의원에 대해서 12일 압수수색을 진행했습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는 현직 의원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취재후 Talk] 13년째 부유 중인 '돈 봉투 유령'…정치권에서 퇴치될까?
2021년 '돈 봉투' 녹취 폭로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왼) 2008년 폭로한 고승덕 전 의원(왼)

▲돈 준 사람 특정한 검찰…돈 받은 사람 폭로 나올까?
13년 전 수사는 비교적 순탄했습니다. 당시 박 전 의장에게 '300만 원 돈 봉투'를 받았던 고승덕 전 의원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 봉투'는 현금 특성상 전달 과정 입증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받은 사람이 직접 말할 경우는 또 다릅니다. 법률가 출신이기도 한 고 전 의원은 "검은 뿔테안경을 쓴 남성이 사무실에 돈 봉투를 두고 갔고 박희태라는 이름이 쓰인 명함이 들어 있어 돌려줬다"며 구체적으로 혐의를 진술했습니다. 특히 본인이 '처벌'을 감수하고 한 진술인 만큼 신뢰성이 높았습니다. 결국 박 전 의장마저 2심 재판에서 "앞으로 선출직에 나가지 않을 테니 선처해달라" 며 혐의를 일부 인정했습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일단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 부총장의 구체적인 녹취를 확보했습니다. '중간 전달책' 진술 일부를 확보한 것이죠. 하지만 직접 전달 역할을 맡은 윤관석 의원부터 받은 것으로 의심받는 의원들 모두는 혐의를 부인 중입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서 돈을 받긴 했지만 의원들에게 전달은 안 했다며 '꼬리 자르기'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앞으로 당 공천을 받아야 정치를 계속할 수 있는 의원들 입에서 폭로가 나오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검찰은 당분간 실무자들부터 조사해 차근차근 증거를 쌓고. 당시 전달 상황을 정확히 복원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후 Talk] 13년째 부유 중인 '돈 봉투 유령'…정치권에서 퇴치될까?
2021년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대표가 당선된 모습

▲"300만 원 돈 봉투 실무자 교통비"…선거 영향 없나?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민주당은 방어에 나섰습니다.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은 300만 원 돈 봉투에 대해서 "실무자들 차비·기름값·식대 정도 수준이다"고 평가 절하했습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국회의원이 300만 원 때문에 당 대표 후보 지지를 바꿀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설령 돈 봉투를 받았더라도 '큰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검찰도 과거 박희태 전 의장을 수사할 때 같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과연 의원들이 300만 원을 준다고 투표에 영향을 받을까?" 궁금해서 고승덕 전 의원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고 전 의원은 "충분히 큰 역할을 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의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내 돈 쓰며 대의원들을 움직이기 귀찮은 경우가 많다"며 "내 돈 안 써도 되게 돈 봉투 300만 원을 주면 선거에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원 판단 역시 같았습니다. 박 전 의장도 과거 돈 봉투 재판에서 민주당과 비슷한 주장을 폈습니다. "관행에 따라 식비·교통비를 줬을 뿐 대의원 의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의원들이 대의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 후 버스를 대절해 전당대회장으로 이동하면 투표권 행사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을 무시하고 돈으로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한 범죄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사실 2012년 박 전 의장 선고 이후 국회는 예외 조항을 추가로 만들었습니다. 중앙당에서 전당대회 대의원에게 '공식적'으로 주는 소정의 교통비·식대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만든 겁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번에 그들이 만든 예외 조항조차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 전 부총장은 녹취에서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 전당대회에 뿌릴 돈을 외부에서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보급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당에서 나온 '공식적'인 돈 봉투는 아니란 겁니다.

 

[취재후 Talk] 13년째 부유 중인 '돈 봉투 유령'…정치권에서 퇴치될까?
"돈 주고받은 자 모두 엄정 처벌" 하겠다는 대검찰청

▲총선 '태풍의 눈'…정계 개편으로 금권선거 퇴치되나?
검찰은 '금권선거는 절대 안 된다'며 이번에도 돈을 준 사람은 물론 받은 사람까지 강력 처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수사 착수부터 최종 확정 판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이 수십 명이고 의원들의 경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것이라 내년 총선 전에 대법원 판결까지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선고가 빨리 나면 결과에 따라 공천을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향후 '의원직 상실'을 할 수 있는 돈 봉투 연루자에 대해 공천을 할지 말지를 두고 당내 큰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돈 봉투 사건이 내년 민주당 정계 재편의 가장 큰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경종을 울리겠다"는 법원의 판결이 무색하게 '돈 봉투'는 13년째 전당대회 옆에서 유령처럼 부유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여야 모두 단순히 누구를 처벌하냐 마냐를 넘어서. 지긋지긋한 유령을 이번에는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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