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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등록 2023.04.20 17:01

수정 2023.04.20 17:10

"모든 시작은 밥 한 끼다."

검사로 시작해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오른 한 드라마 주인공의 독백 첫 마디다. 자신이 빠진 비리의 시작을 '밥 한 끼'라고 정의했다. 사소한 부정, 깃털 같은 비리가 거악을 만들었다는 자기 반성이었다.

이 독백은 개인,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수년간 직원 휴가 숙박비를 꼼수로 지급했다. 공교롭다거나 실수라기엔 지나치게 긴 시간이다. 나름의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기에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TV조선 뉴스 캡쳐

■사소한 시작

한수원은 2012년 연중체련장 제도를 신설했다. 경주가 본사인 만큼 주변 관광지 숙박시설을 직원 복지 차원에서 제공해 지역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의도였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올랐다. 2014년에는 공공기관의 경영상황을 외부에 공시하는 포털도 만들어졌다. 개혁의 칼바람이 불자 이런 류의 복지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한수원은 달랐다. 예산 항목을 '사유지 임차료'에 넣어 제도를 유지했다. 직원 휴가에 숙박비를 지원하는 것은 명백히 복리후생이다. 사실상 복리후생이지만 예산상 복리후생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소수의 인원이 소수의 장소에만 갔다. 지금은 전 사원이 전국 유명한 휴양소에 간다. 시작은 사회 공헌이었지만 지금은 '꼼수 복지비'다.

 

[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TV조선 뉴스 캡쳐

■공교로운 10년

복리후생비를 꼼수로 지급했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궁금했다. 왜 복리후생비에 포함 안 했냐는 질문에 "공교롭게 공시가 누락됐다" "이벤트성으로 시작했다가 (폐지할) 타이밍을 놓쳤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공공기관은 정기적으로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www.alio.go.kr)에 경영현황을 공시한다. 직원 몇 명인지, 보수는 얼마인지, 영업이익이 얼마인지 공개하는데, 이는 경영 평가 항목에도 들어간다. 10년 동안 공시를 허위로 하고, 또 공시를 누락했다.

이는 경영 평가에서 벌점을 부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각 기관마다 공시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는데 이렇게 장기간 잘못된 공시를 했다는 걸 믿기 어려웠다. 몰랐다면 무능력한 것이고, 알았다면 나쁜 것이다.

 

[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TV조선 뉴스 캡쳐

■한수원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연중체련장과 관련한 내부 문건도 확보해 취재를 시작했다. 당연히 한수원도 잘못을 인지했다는 전제에 출발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부 문건이라도 실제 취재한 내용과 다른 경우도 있어 내부 문건을 무시한 채 질문을 던졌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부 문건을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건의 내용은 적나라했다.

"외부 유출 수 문제가 될 사항이 포함됐으니 이틀만 게시하겠다"

"복지 포인트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사유지 임차료로 운영"

"우리 회사만 있는 제도로 다른 공기업도 벤치마킹 원한다"

예약하는 게 불편했는지 50만 원을 먼저 쓰고 이를 정산해달라는 직원 의견에 대한 답변도 상세했다. 사후 정산할 경우에는 인건비에 포함될 수 있다는 국세청 판단까지 덧붙여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절차를 거쳐 한수원이 수년 동안 공시를 허위로 하면서 복리후생비를 꼼수로 고의로 지급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한수원 연중체련장 예약 사이트 캡쳐

■제도 종료에 부쳐

최근 6년 치 사업금액과 수혜인원을 봤더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수원 전 직원과 맞먹는 9000~1만명이 연평균 40억 원가량을 받아 총 238억 4500만 원을 기록했다. 10년 치로 했다면 숫자는 더 커졌을 것이다.

 

[취재후 Talk] '공교로운 10년' 한수원의 꼼수 복리후생
/TV조선 뉴스 캡쳐

구체적인 숫자를 얻는 데는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 도움이 컸다. 한수원은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려 이은정 보좌관을 수시로 찾아갔다고 들었다. 그 자리에 없었으니 항의였는지, 변명이었는지 모르겠다. 국회 연락관이 보좌관을 찾아갔다는 건 스스로도 문제를 인정한다는 뜻이어서 미안하면서도 다소 안심이 됐다.

기사가 나간 뒤 한수원 블라인드에서 불만 글이 쏟아졌다고 들었다. 기사 댓글에서도 항의 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에 한수원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고, 과거에 비해 복리후생비가 크게 줄어 불만이 많다는 것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예산 항목을 바꾸면서까지, 공시를 허위로 하면서까지, 들키면 욕을 먹을 걸 알면서도 그 돈을 받아 가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한수원은 오늘부로 연중체련장 제도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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