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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호퍼가 그린 것은 풍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등록 2023.04.24 15:08

수정 2023.04.24 15:20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리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캐슬린 제이미가 쓴 책 '시선들'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조용히 해, (…) 침묵을 들어."

그의 말처럼, 호퍼의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화면 가득 내려앉은 침묵이다. 어둡고, 중량감 있으며,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침묵. 그것은 배경이라기보다 차라리 주제의식에 가까워서, 그림을 보는 나는 그 강력한 힘에 붙들린 채 한참씩 멈춰 있곤 했다.

호퍼 작품의 침묵은 물론, 인물들 사이에 대화가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의 화면엔 사람이 여럿 등장하지 않고, 등장한다 해도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격리된 채 각자의 고독을 견디고 있다.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많은 경우 나였다. 습관처럼 인물들 간의 대화를 상상하고 앞뒤 상황을 추측하다가,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호퍼의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이야기를 입힌) 사람들이라고.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결국, 그림을 보는 나를 보는 일이기도 하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호퍼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취재후 Talk] 호퍼가 그린 것은 풍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호퍼는 그림을 그릴 때 특정 인물이나 상황을 재현하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다가 본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본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해 화면에 꺼내놓았다. 그러니까 그의 그림은 얼마쯤 재현이면서 높은 비중으로 상상인 셈이다.

그의 인물들에게는 실재하는 사람에게 깃들게 마련인 생활의 감각이 없다. 자질구레한 사연과 삶의 세부사항이 생략된 사람들은 얼마간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일까. 나는 늘 호퍼가 자신이 그린 인물에 별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그의 사람들은 고유하고 개성적인 인격체라기보다 어떤 상황을 표상하는 아이콘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이런 추측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1967년 브루클린 박물관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읽고서다. "나는 미국의 풍경을 그리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을 그리려고 했지요." ('외로운 도시') 호퍼의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인물들이 어떤 '기호'로 읽히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화폭을 채우고 있는 건 그를 매료시킨 바깥의 누군가가 아니라, 형상을 입고 나타난 자기 자신의 내면일 테니.


 

[취재후 Talk] 호퍼가 그린 것은 풍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바다 옆의 방' (1951)

서울시립미술관이 미국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나이트호크'가 오지 않았는데(시카고미술관의 소장품이라고 한다), 대표작의 부재보다 나를 더 아쉽게 한 것은 '바다 옆의 방'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호퍼가 그린 도시의 풍경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이 그림을 거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바다와 면한 방. 한발만 내딛으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추락하고 말 것 같은, 그러나 꼭 한 번쯤은 저 앞에 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공간. 몸은 도시에 결박돼 있으나 늘 자연을 갈망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도, 무장해제 된 채 질릴 때까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방이란 현실에선 가질 수 없는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사실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기실 호퍼는 초현실적 화면을 누구보다 잘 구성하는 작가이기도 했다. 인상파로부터 화폭에 빛을 들여놓는 방법을 배운 그는 거기에 르네 마그리트 풍의 으스스함을 결합시켰다. '바다 옆의 방'은 그런 호퍼의 감각이 절묘하게 배합된 수작이다. 어딘가에 꼭 있을 법하면서도 현실을 본격적으로 초과하지는 않는 풍경. 고백하자면 이런 면모 때문에 나는 얼마간 그를 의심했던 것도 같다.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인 그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영민하게 고안해 내 대중 앞에 내밀었을 거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에서 자연으로, 다시 자연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이번 전시를 보며 조용히 깨달았다. 호퍼는 그저 삶에 자연을 섞고 싶었던 것임을.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그는 옛것을 갈망했고, 문명으로 감싸인 자신의 일상에 한순간 자연이 침입해 들어오기를 바랐다. 그에게 자연은 지척에 두고도 늘 그리운 장소였다. 방문을 열면 튀어오르는 바다, 창문 뒤 비밀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말하자면 그의 내면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까 호퍼는 단 한순간도 자기 자신이 아닌 적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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