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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인간관계 끊는 게 치료 시작"…마약중독 재활공동체 가보니

등록 2023.04.28 18:03

수정 2023.04.28 19:01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중독의 뜻풀이다. 중독에 이르게 되는 원인으로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라는 설명까지 달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재활환자들이 겪은 마약중독의 늪은 사전적 정의와는 사뭇 달랐다. "마약할 때는 제가 중독인지도 몰랐어요. 투약으로 사법처리 받고 재활을 시작한 후에야 마약은 한 번만 해도 중독이란 걸 깨달았어요."

●"마약중독, 당뇨처럼 평생관리로 접근해야"

"마약중독 치료는 완치가 아니라 관리입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마약중독 치료를 당뇨 질환에 빗대 설명했다. 입원 당시보다 퇴원 이후 꾸준한 혈당 관리가 중요한 당뇨처럼 사후관리가 치료의 핵심이란 의미였다.

천 병원장은 마약을 끊는 첫 단계로 '신변정리'를 꼽았다. "마약과 관련된 인간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다시 마약을 찾게 돼요. 중독자가 주변을 정리하고 단약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돕는 재활시설 역할이 중요합니다."

●"마약 끊으려 1년간 합숙"…다르크(DARC) 일과 들여다보니

 

[취재후 Talk] '인간관계 끊는 게 치료 시작'…마약중독 재활공동체 가보니
다르크 오전 입소자 모임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와 격리된 채 치료와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이다. 국내 입소형 재활시설은 민간 약물중독 재활센터인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가 유일하다.

마약중독 재활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단독주택 형태의 공간에서 1년 가량 함께 공동체 생활하며 서로 감시해주는 방식이다.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 센터장은 "1년 2개월이 지나야 뇌 속에 있는 약물 관련 증상들이 흘러 내리고 깨끗해진다는 실험 결과에 따라 재활 프로그램을 짰다"고 했다.

다르크 입소자들은 정해진 일과표에 따라 움직인다. 첫 한 달은 개인 휴대폰까지 관리자에게 맡기고 공용전화만 쓸 수 있다. 마약의 유혹을 끊어내기 위해서다. 입소 4주차를 맞은 20대 입소자 A씨는 "외출 허가를 받더라도 선임자랑 같이 나가야 할 정도로 생활이 제한돼 답답하다"면서도 "이 자체가 마약 생각을 막는 '방지 시스템'인 것 같다"고 했다.

 

[취재후 Talk] '인간관계 끊는 게 치료 시작'…마약중독 재활공동체 가보니
다르크 입소자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B씨. 이 날의 메뉴는 참치 미역국, 오뎅볶음, 깻잎.


다른 입소자들과의 공동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재활도 이뤄진다. 경기도 다르크엔 재활환자 15명이 함께 산다. 입소전 주방 일을 했던 20대 입소자 B씨가 다르크 식구들의 끼니 해결을 책임진다. 그는 "조리 실력 자체도 많이 늘었고 뭔가를 꾸준히 책임감 있게 한다는 자체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입소비 부담에 재활 멈췄다가 다시 철창행"

다르크에 입소했다고 해서 모두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미인가 민간 사회복지시설로 정부 지원없이 환자가 부담하는 입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되다보니 월 50만원인 입소비를 내지 못 해 중도 퇴소하는 환자도 속출하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 센터장은 재활치료를 받다가 다시 중독의 악순환에 빠지는 환자를 접할 때마다 힘겨워했다.

"친구들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혹은 교도소에서 연락이 와요. 우선 일을 해서 돈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마약 전과도 있고 중독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보니 결국 (마약 중독이) 재발해서 또 이렇게 됐다고…."

함께 거주하는 주택 월세와 식비 등 공동 생활비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임 센터장도 급여없이 자원봉사 형태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임 센터장은 "다른 사회복지시설과 달리 마약 중독자 재활 시설은 기업 후원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마약과의 전쟁, 검거 못지않게 재활 중요"

 

[취재후 Talk] '인간관계 끊는 게 치료 시작'…마약중독 재활공동체 가보니
다르크에 대해 설명하는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 센터장


잇단 마약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줄이고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10년 이상 마약 커뮤니티에 몸 담았던 중독자 C씨는 검거 위주의 단죄가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더 큰 마약 사범이 돼서 나온다니까요. 단순 투약으로 감옥 갔다 온 친구도 나오면 판매하고 있어요. 마약 사범끼리 모아 놓은 교도소에서 얻은 지식과 연줄로 마약 상선(윗선) 밑에서 일하고 있고, 그런 경우가 태반이에요."

중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실형 등 강력한 처벌에도 재범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는 얘기다.

임 센터장은 "마약 중독자들을 범죄자로만 보지 말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마약 중독자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일이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마약 확산을 막고 장기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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