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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5년 성취라고 하기엔 초라한 재정 성적표

등록 2023.05.09 16:27

수정 2023.05.09 16:43

문재인 정부 5년이 남긴 성취도 있을 것이다. 검색창에 '문재인 성과'라고 치면 517쪽짜리 성과 자료집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도 최근 주요 이슈마다 문재인 정부 책임론이 불거진다. 난방비 폭탄, 통계 조작 의혹, 나랏빚 급증, 공공기관 부채, 전세사기 등이 그 예다.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기도 하겠으나 적어도 국가 재정, 나라 곳간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걸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건전하다고 평가받았던 우리나라 재정이 어쩌다 지금에 이르렀는지는 문재인 정부를 되짚어 보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취재후 Talk] 5년 성취라고 하기엔 초라한 재정 성적표
 

■채무비율 36%→49.9%

국제통화기금(IMF)은 2017년 당시 연례협의를 통해 "한국 재정은 지속적으로 건전성을 보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했을 때 국가채무가 36%를 기록했을 때였다. 당시 주요 20개국(G20) 평균이 117.5%였던 걸 감안하면 나라 곳간이 괜찮은 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첫 예산안부터 씀씀이를 늘렸다. 고졸 신화로 유명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와 분배, 성장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며 재정을 대거 투입했다.

"내년도(2018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이런 맥락에서 7.1%로 확장적 재정기조로 편성하였습니다."

경상 성장률 전망이 4.5%였는데, 정부 씀씀이는 7.1%로 2.6% 포인트나 높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쌓아둔 재정 여력을 문재인 정부에서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기조는 5년 동안 내내 이어졌고, 김동연 부총리는 5년 뒤에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선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최종 수치는 49.9%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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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재정

당초 예상보다 나랏빚이 크게 불어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실제 주요 선진국도 씀씀이를 큰 폭으로 늘렸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재정을 덜 썼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는 돈을 어떻게 쓰느냐였다. 단순하게 나눠보면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의 선택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대체로 보편복지를 밀어붙였다. 재정을 지켜야 할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처음엔 반대하다가 번번이 뜻을 꺾으며 나라 곳간을 열어줬다. 전 국민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코로나 때문에 전화할 일이 많아지자 전 국민 통신비 지원까지 밀어붙였다. 되돌아보면 재정을 얼마나 쉽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는 동안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는 일관되게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에 집중하라고 조언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우리는 고령화가 급속하기 때문에 아직 복지 증가 소요가 많이 남아있다. 복지 수준을 본 궤도에 올려놓은 유럽이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다면, 우리는 100km로 달리기 위해 지금 70km에서 속도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씀씀이를 늘리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 재정이 튼튼하다며 이를 모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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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40% 마지노선, 근거가 뭐냐?"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 중에 가장 이해 안 되는 일화가 있다. 2019년 5월, 대통령 주재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을 40%로 본다"라며 재정확대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졌다.

"미국은 107%, 일본은 2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놀란 점은 우리나라 채무비율을 기축통화국과 비교한 것이다. 통화를 자유롭게 찍어낼 수 없는 우리로서는 기축통화국처럼 국가채무를 늘렸다간 국가 파산에 치달을 수 있다. 대통령실에서도 근무했고, 당 대표, 대선후보까지 지내고도 이런 차이를 진짜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 이렇게 말한 건지 짐작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라도 나라 곳간을 마음대로 쓸 수는 없다. 5년 임기 동안 과거에 비추어서, 현실을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재정을 써야 한다. 지금 급하다고 재정을 써버리면 미래 세대엔 구멍 난 솥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대통령이 나서서 나라 곳간을 열자고 하니 앞뒤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는 2015년 9월 16일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2016년 예산안을 평가하며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국가채무비율) 40%가 깨졌다"라고 최고위원회의에서 말했다. 자신이 과거에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되짚어본다면 굳이 홍 부총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국가채무가 급증한 데에는 재정의 무게를 이렇게 가벼이 인식한 대통령의 인식도 적잖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취재후 Talk] 5년 성취라고 하기엔 초라한 재정 성적표
 

■"다음 정부는 아껴쓰라"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예산안에 남긴 것 중 하나는 씀씀이 축소다. 쉽게 말하면 "다음 정부는 아껴 쓰라"라는 뜻이다. 재정 지출 증가율을 올해는 5.0%로, 2024년 4.5%, 2025년엔 4.2%까지 낮추라는 주문이다. 홍남기 당시 경제부총리도 이런 점을 인정했다.

"2023년 이후부터는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재정 운영 기조를 상당 부분 정상화하는 그런 순서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재정 기조를 정상화한다는 건 그동안 재정 운용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자인하는 말이다. 5년 동안 늘린 씀씀이를 줄이라는 뜻인데, 정상화의 책임을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건전성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사실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나랏빚이 늘어서 미래 세대에 빚을 지우게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 코로나19와 같은 위기가 왔을 때 우리 재정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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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재정 모니터 보고서

■IMF의 경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채무비율을 올해 55.3%에서 2028년엔 58.2%까지 급증할 걸로 경고했다. 기존 발표보다 다소 높아졌는데, 성장률 저하로 GDP가 하락한 영향도 있다. 하지만 채무비율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건 변함이 없다.

유럽의 평균은 올해 89.8%에서 2028년 85.4%로 내려가지만 주요 20개국(G20)은 같은 기간 123.5%에서 130.9%로 올라간다. 우리는 나랏빚 비율이 증가하는 쪽에 포함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복지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국가들은 채무비율이 한번 늘어나면 되돌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성장률이 껑충 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계속 나랏빚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정 여력을 남겨뒀던 것이고, 허투루 쓰는 예산 낭비를 경계했다. 재정만 보자면 문재인 5년은 이런 공식이 무너진 시기였다.

 

[취재후 Talk] 5년 성취라고 하기엔 초라한 재정 성적표
다큐 '문재인입니다' 예고편 中

■5년의 성취

"5년간 이룬 성취, 제가 이룬 성취라기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함께 이룬, 그래서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인데, 그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허망한 생각이 들지요."

얼마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 예고편에서 문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미래로부터 잠시 빌린 재정의 방향타를 내 것인 양 다루다 보니 재정이 망가졌기 때문에 저 성취에는 재정 성적표가 포함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흔히 말하듯이 지금 늘린 빚은 미래 세대의 몫이다.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남은 4년 동안 재정을 얼마나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적어도 재정 성적표만 보자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말처럼 과거로 되돌아가는 건 환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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