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봄날은 갔다

등록 2023.05.18 21:49

수정 2023.05.18 22:20

"나뭇잎은 메말랐고, 하늘은 잿빛이네…"

뉴욕 사는 부부가 추운 겨울밤에 따뜻한 LA를 꿈꾸며 썼던 캘리포니아 찬가이지요.

"LA는 좋은 곳이지. 늘 햇빛이 내리쬐고 편안하지…"

닐 다이아몬드도, 아델도 햇살 눈부신 캘리포니아를 찬미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그러나 더는 천국이 아닙니다. 지난 겨울 석 달 넘도록 유례없는 폭우와 폭설이 퍼부으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됐습니다. 3월에는 뜬금없는 토네이도까지 몰아닥쳤지요. 태평양 수온 상승이 일으킨 재난입니다.

몇 년 전부터 동해안에도 등장한 해상 가두리 양식장입니다. 봄가을에 씨알 작고 맛없는 방어를 잡아다, 기름이 두둑하게 오른 대방어로 키워 제철 겨울에 출하하지요. 방어가 동해 북단 고성까지 올라오면서 강원도 최다 어획종이 된 덕분입니다. 본고장 제주도 어획고까지 추월해, 동해 방어가 제주도 횟집으로 팔려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동해에서 참치, 조기, 병어가 나고 독도에서 홍어가 잡힙니다. 멸치는 제주도까지 내려갔고 서해에서 멸치, 오징어, 대구가 납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동해 명태, 남해 멸치, 서해 조기'가 헛지식이 된 지 오래입니다.

때아닌 5월 폭염 역시 서태평양 수온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바람에 그제 강릉 기온이 35.5도까지 치솟아 11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5월 날씨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가장 일찍 찾아온 폭염입니다. 어제는 삼척 최고기온이 34.5도에 이르렀고, 뙤약볕이 쏟아지면서 서울에 때이른 오존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벌써부터 한여름 더위에 시달리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베트남과 미얀마에는 지난달 말 43도를 웃도는 괴물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중국 남부와 스페인도 40도를 훌쩍 넘었고, 미국 서북부 해안도 5월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게다가 올여름엔 해수면 온도가 1.5도 넘게 올라가는 '수퍼 엘니뇨'가 올 것 같다고 합니다. 모진 폭염과 폭우를 어떻게 견뎌낼지 벌써부터 난감합니다.

등꽃이 지면 봄도 떠난다고 하지요. 벙그러지는 등꽃 아래서 시인이 설핏 풋잠이 들었습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환하게 아픈 땡볕 여름, 알몸으로 건너가느니"

올봄 꽃들이 한꺼번에 화르르 피었다 화르르 졌듯, 등꽃도 4월 중순부터 피어 5월이 채 오기도 전에 져버렸습니다.

일찍 쳐들어와 오래도록 위세를 부리는 여름에 치여, 갈수록 봄이 짜부라듭니다. 좋은 시절은 빨리 갑니다. 나른한 늦봄 냄새도 못 맡았는데 그새 더위에 쫓겨가고 말았습니다.

5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봄날은 갔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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