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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미래로 가는 또 한 걸음

등록 2023.05.22 21:50

수정 2023.05.22 22:15

"오랜만에 뵙습니다. 고모마마" "조선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덕혜옹주를 고모라고 부르는 이 남자는,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 이우입니다. 일제가 일본 왕족과 시키려던 정략 결혼을 4년이나 거부한 끝에 박영효의 손녀와 결혼했지요. 그는 "일본 것은 병적이라 할 만큼 싫어했고, 일본의 간섭에 사사건건 반발했다"고 합니다.

일제의 법령에 의해 일본군 장교가 된 그가, 히로시마로 배속됐을 때도 전역을 요구했지만 끌려가다시피 했지요. 한 달쯤 뒤 출근하던 그의 머리 위로 섬광이 번쩍였습니다. 원자폭탄 폭발 중심 부근에서 그는, 만신창이가 돼 숨졌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들어섰습니다.

피폭 생존자와 유족들은 한일 정부의 무관심 속에, 어렵게 세운 위령비 앞면에 이렇게 새겼지요. 그리고 다시 29년 외로운 싸움 끝에,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으로 위령비를 옮기는 원을 풀었습니다. 그 한 달 뒤 오부치 총리가 처음 헌화했고, 양국 정상이 함께 참배하기까지는 또다시 24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이 오랜 세월,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을 외면한 배경에는 '특유의 피해자 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일본이 원자폭탄의 최초 피해자 라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라는 진실을 애써 가리려는 심리를 가리키지요. 일본이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머뭇거리는 것도, 거기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는 위안부, 강제징용과 함께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가장 아픈 상처입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방치하다시피 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총리가 먼저 제안해, 한국 대통령과 함께 위령비에 고개 숙인 것은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결과적으로 일본의 피해자 심리를 거스르는 것이 된다면 일본 총리로서는 나름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처음 위령비에 참배하고, 처음으로 피해 교민들을 위로한 것 역시 너무 늦었지만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늦게 찾아뵀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에 이토록 감격하는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답방 때 강제 징용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의견' 이라고 선을 그어 아쉬움을 남겼지요. 그에 비해 위령비 공동 참배는 또 한 걸음 진일보로 평가할 만합니다.

한일 셔틀외교가 미래를 향한 디딤돌을, 이렇게 하나 둘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두 나라 사이에 쌓인 불신도 언젠가는 녹아내리지 않겠습니까. 5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미래로 가는 또 한 걸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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