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내가 가장 나중에 지닌 것

등록 2023.05.23 21:53

수정 2023.05.23 22:02

"나는 생각하네. 아이들은 그저 잠시 외출했을 뿐이라고. 곧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독일 시인이 두 자녀를 성홍열로 잃고 쓴 시에 말러가 곡을 붙인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입니다. 그런데 3년 뒤 말러의 첫딸이 성홍열로 세상을 뜨고 맙니다. 말러는 죄책에 시달리다 병을 얻었고, 죽기 직전 딸 무덤에 묻히고 싶다고 했습니다.

박완서는 단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 자식 잃은 슬픔을 담았습니다. 김현승의 이 시에서 제목을 따왔지요. 시인은 '나중'의 방언 '나종'을 길게 늘어뜨려 간절함을 더했습니다. 가장 나중에 지닌 마지막 모든 것, 자식을 뜻합니다. 시인은 네 살 아들을 잃고 신을 원망하다 깊은 슬픔을 더 깊은 믿음으로 승화시킵니다. 박완서도 생때같은 외아들을 앞세운 뒤 수녀원에 들어가 하느님에게 "한 말씀만 하시라"고 따졌지요. 그러다 이웃에게 무심했던 삶을 뉘우치고 나눔과 베풂에 눈을 떴습니다. 

천안함 순국용사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가 기부한 기관총 두 정이, 새롭게 태어난 천안함에 탑재됐습니다. 해군은 '민평기 기관총'으로 명명하려 했지만, 어머니는 46용사 모두를 기려야 한다고 해서 '3.26 기관총'이 됐지요. 어머니는 형편이 여유롭지 않은데도 보상금에 성금을 더한 1억9천만 원을 내놓아 새 초계함 아홉 척에 기관총을 기부해왔습니다. 드디어 천안함에 실린 기관총을 어루만지며 "아들아, 네가 죽어서도 서해를 지키는구나" 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폭침이 누구 소행 입니까" 라고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던 일을 되새기며 말했습니다. "남 얘기처럼 말하지 않고 분명하게 공식적으로 발언해야, 문 전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더는 음모론을 주장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는 피눈물 나는 13년의 슬픔과 고통을 호국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며칠 전엔 삼풍백화점 붕괴로 세 딸을 한꺼번에 잃고 장학재단을 세운 정광진 변호사가 별세했습니다. 어려서 실명한 큰딸 윤민 씨의 모교에 재단을 기증해 30년 가까이 시각장애 학생들을 보살펴왔지요. 윤민 씨는 서울맹학교를 나와 미국 버클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모교 교사로 갓 일하다 참변을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한때 세상을 원망했지만 보상금에 사재를 더한 13억5천만 원을 출연해 세 딸의 희생을 세상의 빛으로 되살려냈습니다. 윤 여사와 정 변호사는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피붙이를 만나도 떳떳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형벌 같은 그리움을 나라와 이웃 헌신으로 승화해내는, 강하고 아름다운 부모를 자식도 자랑스러워하겠지요.

5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내가 가장 나중에 지닌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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