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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尹 대통령이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을 만나는 이유

등록 2023.05.25 16:50

수정 2023.05.25 16:59

[취재후 Talk] 尹 대통령이 태평양 섬나라 정상들을 만나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 일행을 만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딱 10년 전 태평양 도서국 취재를 다녀온 적 있다. 팔라우부터 괌(미국령)을 거쳐 마이크로네시아연방(FSM)의 3개 섬(축·폰페이·코스라이), 그리고 마셜제도의 2개 섬(콰잘렌·마주로)까지 9차례 비행기를 옮겨 탄 여정이었다.

2주에 걸친 취재 끝에 쓴 기사의 첫 줄은 "태평양은 넓지 않았다"로 시작했다. 2만5000여개의 섬에 900만여 명의 인구, 14개의 독립국들이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빈틈없이 채워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는 취지였다.

80여년 전 미국과 일본의 전장이었던 대양(大洋)은 어느새 미국과 중국 사이 전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패권국' 미국을 필두로 일본·대만·호주 등이 서로 경쟁하던 구도가 섬을 통째로 사버릴 정도의 자본을 투입하는 중국의 도전에 직면하면서 대양은 더욱 '붉고 좁게' 변해갔다.

섬나라 현지에선 치열한 각축전이 더욱 뚜렷하게 보였다. 전봇대부터 건물까지 시설 곳곳에 일장기나 대만 국기가 보였다. 지원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원조지만,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고 기록한다는 의미다. 공항을 뚝딱 지어줄 정도로 '퍼붓는' 중국은 오히려 자신들이 무슨 지원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고 한다. 수혜국 입장에선 중국의 통큰 방식에 대한 반응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티를 내는 일본·대만, 쏟아붓는 중국을 보며 '한국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지원도 안 하면서 티부터 내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4강 외교'와 '북핵 대응'만으로도 버거운 국력의 현실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당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도움으로 각 섬나라 대통령들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대부분 정상들은 식민지와 전쟁의 역사를 공유하는 한국과의 관계 발전과 정상급 교류를 원했다. 일본은 이미 정례적으로 14개국과 정상회의를 열며 과거 '남양군도(南洋群島)' 때의 영향력을 되찾으려 시도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장관급 회의(외교장관희의) 개최에 만족하던 때였다.

각종 자원과 군사적 중요성을 넘어 작은 섬나라들이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국제무대에서의 '표심'이다. 인구가 1만명 남짓한 투발루와 나우루도 유엔과 같은 기구에서 중국·인도와 똑같은 '1표'를 행사한다. 부산엑스포 유치에 도전한 한국으로선 절실한 '1표'들이다.

아름다운 환초섬(atoll)에서 국력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목격한지 딱 10년만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태평양 도서국 14개국의 정상회의 소식을 듣게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에서 개최되는 첫 대면 다자 정상회의로, 이달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서울에서 진행된다. 미래의 협력 방향과 지역 정세 등을 논의하고 부산 엑스포와 관련한 협력도 다룬다고 한다. 방한하는 10여개국 정상들과의 개별 양자 회담에 김건희 여사가 주최하는 공식 만찬도 한다. 정상들의 부산 방문도 예정돼있다.

태평양은 이미 좁아졌고, '미지의 섬나라'는 더 이상 없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18년 일찌감치 파푸아뉴기니를 찾았고,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비록 국내 사정으로 막판 취소됐으나 방문을 추진한 바 있다. 태평양도서국 정상외교에 첫발을 뗀 윤 대통령이 '초청'에 그치지 않고 임기 중 직접 섬나라를 찾는 순방 외교도 고려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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