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용서의 힘

등록 2023.06.02 21:46

수정 2023.06.02 22:14

2016년 미국 필라델피아시가 해밀턴가를 '오인호 추모의 길'로 명명했습니다. 1958년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가 흑인 불랑배들에게 살해됐던 곳이지요. 잔인한 살인에 당시 미국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인호 씨의 아버지인 부산 피란민 교회 개척자 오기병 장로가, 필라델피아 시장에게 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살인자들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가장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기를 청원합니다. 그들에게 5백 달러를 모아 보내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미국 땅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바른 청소년 교육을 일깨우는 표상이 되기를 원했지요. 묘비에는 아버지의 편지 한 구절이 새겨졌습니다.

필라델피아시는 '오인호 추모 장학금'을 만들었고, 지역 교회들은 백 60만 달러를 모아 한국 숭실대에 기부했습니다. 미국 장로교회는 '한국에서 온 편지' 라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인호 씨의 모교 이스턴대는 장학금과 함께 도서관에 추모 자료실을 만들어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지난주 서울예고에 대형 문화공간 서울아트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 학교에 다니다 학폭에 숨진 이대웅 군의 아버지 이대봉 회장이 200억 원 넘는 사재를 들여 완공했습니다. 그는 36년 전 아들이 선배들에게 얻어맞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을 때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숨진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복수할 생각도 품었습니다.

그러다가 복수를 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데 생각이 멈췄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로 맘먹었습니다. 학생들이 돈을 모아 비석을 세워주고, 추모음악회를 열어 눈물바다를 이룬 것도 위로가 됐습니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그에게 놀란 검사가 "선처할 수 없다"고 하자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지요. 

그는 이대웅 음악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3만여 학생들을 도왔습니다. 2010년에는 도산 위기에 빠진 서울예고와 예원학교재단을 인수한 뒤 투자를 쏟아 예술 명문으로 키워왔지요. 교사 학생들이 간절히 원했던 공연장도 개교 70년을 맞아 선물했습니다. 열아홉 살에 고물상으로 시작한 그는 항공운수사업으로 성공해 열일곱 계열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풀려나 서울대에 진학했던 가해 학생이 찾아오겠다고 할 때마다 그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보면 혹시라도 내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울분이 솟구치지만, 용서의 힘이 복수의 힘을 앞선다고 믿습니다" "용서는 가장 숭고한 승리"라고 합니다. 폭력에 자식을 빼앗기고도 그는 용서의 힘으로 끝내 승리했습니다.

6월 2일 앵커의 시선은 '용서의 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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