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전체

[박정훈 앵커의 한마디] 숨막히는 현수막 정치

등록 2023.10.20 19:25

수정 2023.10.20 19:47

[앵커]
'일시에 쥐약 놓아 남은 쥐 모두 잡자'

1970년대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입니다. 이 현수막을 보고 어릴 적 학교에서 쥐약을 나눠주던 기억이 떠오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1960년대에는 '부녀자 가출을 금지한다'는 현수막도 붙었습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여성들이 무조건 상경하는 걸 막기 위해 보건사회부가 벌인 캠페인이었습니다.

매스컴과 SNS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이런 현수막을 통해 국민 계몽사업들을 벌였는데, 그 바람에 당시 현수막을 보면 시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2023년 거리를 가득채운 이런 현수막들은 어떻습니까. 여야가 죽자살자 싸우는 통에 거리는 온통 저주의 문구들이 넘쳐납니다.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이런 현수막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차오르게 되죠. 한술 더떠 군소정당의 이런 현수막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는 문구들로 채워집니다. 한달 평균 4000건 넘는 민원이 행안부에 접수됐을 정도라니 현수막 공해가 더 이상 참기 힘든 수준입니다.

갈등을 조장하는 이런 정당현수막은 지난해 12월 민주당이 발의해 통과된 옥외광고물법 탓에 생겨났습니다. 장소와 개수, 내용에 별 제한이 없다보니 극단적인 정치혐오 내용으로 채워지게 된 거죠. 물론 여기에도 국민 세금이 쓰입니다. 보름간 내걸린 현수막은 쓰레기로 태워져 환경 오염까지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도 참 부끄러운 모습이죠.

여야는 모두 이 현수막을 정쟁에 활용해 왔는데, 특히 이재명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현수막이 지역별로 몇개나 붙었는지 별도 보고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은 정쟁을 삼가는 차원에서 오늘 전국에 나붙은 정쟁형 현수막들을 떼어냈습니다.

[박정하ㅣ국민의힘 수석대변인(오늘)]
"국민, 민생, 경청 이런 것들이 당분간 우리당의 모토 내지 개념이 될 것"

정치가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 일종의 반성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직 뗄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검찰의 과잉수사와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민심이 흉흉해진데는 정부 여당의 잘못도 크지만, 이 대표 개인의 사법리스크를 온몸으로 막고 있는 야당의 잘못은 정말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부디 2024년 거리의 풍경은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앵커의 한마디는 '숨막히는 현수막 정치'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