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안타깝습니다

등록 2023.12.07 21:51

수정 2023.12.07 22:00

강원도 정선에서도 두메산골, 오대천 골짜기에 험한 벼랑길이 있습니다. 1980년대 신작로가 나기까지 마을 사람들이 매달리다시피 다녔다고 합니다.

그 골짜기 이름이 열 석 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입니다. '바위를 안고 돌고, 등지고 도느라 다람쥐도 한숨을 내쉬는 바윗길' 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길을 가려면 앞장선 사람의 배포가 두둑해야겠지요.

남극의 '퍼스트 펭귄' 처럼 말입니다.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서는 펭귄들이 빙산 끝에서 머뭇거릴 때, 맨 먼저 뛰어드는 펭귄을 가리킵니다. 그렇듯 모든 조직에는 과감하게 새 길을 뚫는 개혁가가 필요한 법이지요.

하지만 조직도 조직 나름입니다. 이어령 선생은 '원리 원칙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부조리 사회에선, 약자가 강자의 마음을 살피는 눈치가 지혜' 라고 꼬집었습니다.

닭 꼬리 쪽에 뾰족하게 뭉친 기름진 부위를, 강원도에선 '면장 모가지' 라고 부릅니다. 예전 어느 면장이 군수를 모시고 닭을 먹다 이 부위를 덥석 먹는 바람에 잘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눈치가 없었다지만 그렇다고 목을 날리는 군수는 뭔가요. 

"인 위원장 오신다니 이만큼 많은 언론이 오신 거 보니까 그동안 활동을 잘하신 거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고요." 

김기현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거듭 추켜세우며 작별 인사 비슷한 말을 건네는데, 인 위원장은 딱 한마디하고 맙니다.

"감사합니다." 

인 위원장은 불과 15분 만에 끝난 비공개 면담에서도 웃음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일어서면서는 '생즉사 사즉생' 이라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고 하지요. 나오면서 기자들 질문에도 입을 닫았습니다. 갈등을 봉합했다고 하지만, 이 어색한 이별이 뭘 뜻하는지는 다 아실겁니다.

혁신위의 빈손 조기 퇴장은, '희생' 혁신안을 김 대표가 묵살한 지난 4일 이미 판가름 났으니까요. 이로써 국민의힘은 강서 참패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혁신위 출범이, 일단 선거 패배 책임을 모면하고 보려는 이벤트였다 해도 할 말이 없게 됐고요.

자기 희생이 없는 혁신은 시늉일 뿐입니다. 주겠다던 '전권'은, 희생과 공천을 건드리지 말라는 허깨비 전권 이었습니다. 중진들이 버티면 초선 의원들 이라도 나서야 할 텐데 침묵으로 일관한 것도 한심합니다.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비공개 오찬을 전격 공개한 것도 결국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모양새가 됐습니다. 인 위원장이 몇 차례 실언을 했습니다만, 죄라면 결국 눈치를 볼 줄 몰랐다는 죄겠지요. 

'개혁자란, 바닥이 유리로 된 배를 타고 하수로를 떠내려가는 사람'이라는 역설적 명언이 있습니다. 배 아래 오물이 환히 보이는데 시궁창을 흘러가면 그 끝이 어디겠습니까.

지금 국민의힘이 가는 길이 제 눈엔 그렇게 보이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12월 7일 앵커의 시선은 '안타깝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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