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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이제 그만 안녕

등록 2023.12.19 21:51

수정 2023.12.19 21:55

청록빛 계곡 물을 내려다보는 정자에서 대금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집니다. 경북 영덕 옥계계곡에서도 빼어난 명승, 침수정입니다.

국보 승격을 앞둔 밀양 영남루에는 침류각이 있습니다. 둘 다, 자연과 한 몸이 돼 유유자적 살아가는 은둔의 삶 '침석수류'에서 이름을 따왔지요.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어느 선비가 써먹으려다 거꾸로 '침류수석' 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이를 닦는다'는 얘기니까, 코로 물이 들어가고 남아날 치아는 없겠지요. 듣던 친구가 비웃자 그는 "쓸데없는 말을 들으면 귀를 씻고, 돌로 이를 닦아 단련하는 것" 이라고 우겼습니다.

그 뒤로 침류수석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억지를 부린다'는 사자성어가 됐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말처럼,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남을 속이려 드는 사람들이 그렇지요. 요즘 말로 '도덕불감증' 이라고 할까요.

돈봉투 사건으로 귀국하던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파리 공항 패션입니다. 외투를 걸치고 빨간 책을 든 모습이, 한 달 전 한동훈 법무장관의 공항 패션 판박이였지요.

그가 든 책은, 영화로 나와 한창 화제였던 오펜하이머 전기의 영어 원서 였습니다. 누명을 쓰고 쫓겨났다 복권된 오펜하이머처럼 탄압받지만, 마침내 누명을 벗고야 만다는 몸짓으로 해석됐지요.

귀국 후 송 전 대표가 벌인 사방팔방 좌충우돌은 익히 듣고 보신대로입니다. 상식과 합리를 거침없이 넘나들던 언행들의 끝이 구속으로 일단락됐습니다.

그는 검찰에 출석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시킬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영장실질심사 에서도 돈봉투를 비롯한 모든 걸 "몰랐다"며 다 "검찰의 기획수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장판사는 그가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고 돈봉투에 관여한 점이 소명돼 사안이 무겁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영장을 기각할 때 신중했던 것과 달리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언했지요. 그 염려의 상당 부분은, 송 전 대표의 그간 언행이 자초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장 발부 사유에서는, 그가 걸린 자기 기만의 도덕불감증이 환히 드러나 보입니다 그는 운동권 출신 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들이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무오류의 환상이 그의 구속으로 붕괴됐습니다. 이제 86세대 퇴진의 물꼬가 터진 것이지요.

청백리 양진에게 지방수령이 한밤중 몰래 찾아와 황금 열 근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양진이 물리치며 말했습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안다." 세상의 그 밝은 이치를 모르는 척하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보다 그들 자신에게 불행한 일입니다.

12월 19일 앵커의 시선은 '이제 그만 안녕'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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