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불길보다 뜨거운 사랑

등록 2023.12.26 21:51

수정 2023.12.26 21:54

아버지와 세 아들이 앉아 있는 뉴욕 어느 매장에서 괴한이 총을 난사합니다. 아버지가 급히 몸을 날려 아이들을 덮치듯 감쌉니다. 허벅지에 총을 맞고도 끝까지 지켜내지요. 

"아빠, 아빠는 영웅이야!"

이번에는 중국의 낡은 주택 건물 네 채가 무너진 현장입니다. 잔뜩 웅크린 채 숨진 아버지 아래로 세 살 딸의 다리가 보입니다. 아버지가 온몸으로 잔해를 버텨줬기에 아이는 가벼운 상처만 입고 구출됐지요.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캄보디아 여객기가 밀림에 추락했습니다. 수색팀이 시신을 수습하다 숙연해졌습니다. 가족 여행을 온 조종옥 씨가 한쪽 팔로 아홉 달 된 아들의 몸을 감싸 품은 채 숨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다른 한 팔은 날아든 프로펠러에 떨어져나갔고, 아이의 시신에는 팔에 가벼운 상처만 남아 있었습니다.

불교 말씀에 '이 목숨 있는 동안 자식의 몸 대신하고, 내 죽은 뒤엔 자식의 몸 지키길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서양에도 '한 부모가 열 자식을 기를 수 있어도,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지요.

그런데 성탄절 새벽, 불길에 휩싸인 아파트에서 불길보다 뜨거운 내리사랑과 치사랑이 나란히 시현됐습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어린 피붙이와 연로한 어버이를 구하느라 목숨을 바친 두 희생이 슬프게 빛났습니다.

서른두 살 가장은, 바로 아래 3층에서 화염이 치솟자 일곱 달 된 딸을 이불로 감싸 안고 뛰어내렸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다쳐 숨지고 말았습니다. 앞서 재활용품 포대로 두 살 딸을 던지고 뛰어내린 아내는 어깨가 골절돼 입원했습니다. 부모의 용기와 헌신으로 두 아이는 무사히 구조돼 치료를 받고있죠.

10층에서 자던 서른여덟 살 아들은 노부모와 동생을 깨우고 119 신고를 했습니다. 가족부터 무사히 대피시키고 나서야 탈출했지요. 그러는 사이 연기에 질식해 한 층 위 계단에 쓰러져 숨졌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잃은 부모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와 동생은 치료를 받고 있고, 아버지는 아들의 빈소를 지키며 '나는 어떻게 하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공경으로 효도하기보다 사랑으로 효도하기가 어렵고, 어버이를 잊기보다 어버이가 나를 잊게 하기가 어렵다.'

효도는 일부러 하는 의무가 아니라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아들의 희생이 바로 그런 효도겠지요.

부모와 자식의 생사가 가슴 저리게 엇갈린 비극이, 성탄절 많은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약하고, 남을 위해서는 강하다'는 톨스토이의 명언을 생각합니다.

12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불길보다 뜨거운 사랑'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