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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한국 정치 어디로 가나

등록 2023.12.28 21:44

수정 2023.12.28 21:48

외딴 집앞 텃밭을 살피던 노인의 눈이 짐승 발자국에 멈춥니다. 네 발 자국에서 하나가 부족합니다. 노인은 서너 해 전, 올무에 걸린 발목 하나를 물어 끊고는, 눈밭을 선혈로 물들이고 사라진 고라니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번엔 봄동 앞에서 망설이다 뜯지도 않고 돌아섰습니다. 왜 그랬을까, 시인이 생각합니다. '배고픔보다 곡진한, 천식 앓는 노인의 기침소리 였을까.' 노인이 미안하고 고맙다는 듯, 지팡이로 발자국 하나를 찍어 넷을 채워줍니다.

서로 뺏고 지키려는 짐승과 인간의 대결이, 아름다운 교감으로 승화하는 우화 시입니다. '초원을 달리다 저무는 저녁 해를 바라보는 유목민의 얼굴색, 잘 구워 곰삭은 벽돌색, 암탉의 온기가 남은 아침 첫 달걀색…'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가 광화문 교보빌딩, 강남 교보타워, 연수원을 지을 때 주문했던 색깔이라고 합니다. 시를 닮은 그 빛깔에는 원색이 없습니다. 끝까지 부딪치며 따로 노는 보색의 대치도 없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의 어록 하나 돌아보겠습니다.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고 나면 옛날에는 전부 가서 술을 먹었지. 그런데 요즘은 술도 나눠먹질 않아. 자꾸 이기려 하면 싸움뿐. 야당은 지면서 이기는 것이야"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험상궂은 얼굴로, 대놓고 칼을 휘두르는 게 요즘 우리 정치판입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며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연말까지 이재명 대표 사퇴와 통합 비대위 구성을 요구해 놓았습니다. 이 대표와 지도부 태도로 보아 신당 창당은 시간문제인 듯 하죠.

여야 양대 정당 전 대표들의 탈당 행보는 우리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분화와 분열로 어지러운, 이합집산의 새해를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거기에다 민주당은 이른바 '쌍특검법'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책임과 잘잘못을 떠나 정치공학의 잔기술이 횡행하는 정치라면, 어지러운 이전투구로 치달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희생과 혁신을 해낸 정당이 승리했고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당 모두 꽃길과 양지만 찾으려는 행렬로 북적입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기득권 정치, 여의도의 아성을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정치가 막장으로 내달린다곤 해도, 우리 정치에 비하면 나아 보입니다. 극한 대결과 막장 정치에 절망한 의원들의 불출마가 수십 명씩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협의와 타협이 실종된 보색 정치, 모든 것을 걸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고주일척의 정치에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이 캄캄한 어둠을 밝혀줄 유권자의 촛불 하나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12월 28일 앵커의 시선은 '한국 정치 어디로 가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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