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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 일기] 제러미 덴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등록 2024.04.15 15:41

수정 2024.04.15 15:46

[한 문장 일기] 제러미 덴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에포크 제공(예스24 캡처)

나는 학생들이 대체로 그렇듯 어려운 대목에 집중하느라 다른 모든 것을 내팽개쳤다. 내가 호들갑 떨며 연주하는 동안 셰복이 웃더니 또 한 명의 유명한 예술가를 거론했다. "하이페츠의 비결은 자신이 음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거네. (…) 그는 놓친 음에 대한 두려움이 몸에 배도록 하지 않았어. 그런데 자네는,"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마치 그 화음이 자네로부터 달아나기라도 하듯 쫓아가고 있어."

- '콩쿠르와 마스터클래스'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글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가장 먼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면모는 진지한 음악가의 그것이다. '발트슈타인'의 3악장을 설명하는 대목을 읽어보자. "베토벤은 첫 악장의 폭발력에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한다. 그는 첫 악장의 세계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매혹적인 속삭임으로 시작한다. (…) 베토벤의 속뜻은 훨씬 더 심오하다. 선율은 도약의 몸짓,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의미가 넘어가는 것, 우물에서 물을 긷듯 깊은 심연에서 자양분을 취하는 것을 나타낸다."

다음으로는 끊임없이 툴툴대는, 어린 피아니스트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린다. 덴크는 말한다. 라흐마니노프는 브람스에 비해 순정하지 않다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아이처럼 유치하다고. 그러나 다음 순간, 돌연 자세를 바꾸며 눈을 빛내는 그가 보인다.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발견하고 스트라빈스키의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음악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이야기.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밀고 당길 수밖에 없었던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신들이 행성들로 볼링을 친다고 상상해보게.")

성장 중인 덴크가 스승들을 한 사람씩 지나쳐 달려나간다. 그들은 손을 흔들고, 눈 인사를 전하며, 너른 포옹으로 그를 떠나보낸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조금씩 알게 된다. 지금의 덴크를 있게 한 것은 이 찬란한 우정과 작별임을.

 

[한 문장 일기] 제러미 덴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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