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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서울의 이팝 꽃, 평양의 이밥 꿈

등록 2019.05.07 21:45

수정 2019.05.08 15:51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령초등학교에는 키 10미터 넘는 이팝나무들이 모여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이 곳을 '아기 사리'라고 부릅니다. 아기가 묻혔다는 뜻이지요. 삼백년 전 마령 들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엄마 빈 젖만 빨다 굶어 죽은 아기를 아버지가 지게에 지고 가 묻었습니다. 무덤가에 이팝나무를 심어, 죽어서라도 쌀밥 실컷 먹기를 바랐습니다.

이팝나무는 오뉴월 보릿고개마다 눈부시게 하얀 꽃을 푸지게도 피웠습니다.

굶주린 백성 눈에는 쌀밥치고도 윤기 자르르한 고봉밥이었습니다. 마령 사람들이 아기 무덤을 피해 다니면서 이팝나무는 잘 자라 숲을 이뤘고 그 숲에 초등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서럽게 흐드러진 쌀밥꽃 아래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 놉니다.

오월 서울 거리에 이팝 꽃이 만발했습니다. 청계천부터 대학로 충무로 올림픽대로까지 눈을 뒤집어쓴 듯 새하얀 꽃을 매달았습니다.

이팝나무는 청계천 복원 때 심기 시작해 서울 가로수의 5%를 차지하며 다섯번째로 많아졌습니다.

공해에 강하고 풍성한 꽃을 이십일 넘게 피우는 덕분이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팝 꽃 보며 보릿고개를 떠올릴 이가 몇이나 될까요. 이팝이라는 이름 역시 순 쌀밥, 이밥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잡곡 섞지 않은 입쌀밥의 옛말 니밥이 이밥으로 변한 것이지요. 북한 김일성이 "이밥에 고깃국 먹고 싶다는 인민의 숙원을 실현하겠다"고 했던 바로 그 이밥입니다.

하지만 이밥의 숙원은 김정은 위원장까지 삼대를 이어 옵니다.

지난달만 해도 북한은 유엔에 식량 140만톤을 요청해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드러냈습니다.

지난주에는 노동신문이 "금보다 쌀이 귀중하다"면서 김 위원장의 어록을 실었습니다.

"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 그 말에서 '금'을 '핵'으로 바꾸면 이밥의 숙원이 풀린다는 사실을 김 위원장도 모를 리 없을 겁니다.

핵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수 없다. 그런데도 다시 미사일 불놀이를 시작한 김 위원장의 얼굴에 깡마른 북한 사람들 얼굴이 겹쳐 떠오릅니다.

5월 7일 앵커의 시선은 '서울의 이팝 꽃, 평양의 이밥 꿈'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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