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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강 건너 불, 울산 사태

등록 2019.05.30 21:44

수정 2019.06.03 15:51

칸과 베네치아를 비롯해 국제 영화제를 휩쓴 홍콩 단편영화 '버스 44'입니다. 중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합니다.

강도 두 명이 시골길에서 44번 버스를 습격합니다. 승객들 돈을 빼앗고 여성 기사를 성폭행합니다. 그런데 도와주려고 나선 승객은 한 명뿐입니다.

"다들 보고만 있을 건가요?"

청년은 강도에게 다친 채 버스를 떠나보냅니다. 얼마 안 가 버스는 절벽으로 추락합니다.

"승객, 운전사 전원 사망입니다…"

감독은 중국에서 꺼리는 숫자 4를 둘 겹쳐 버스번호를 붙였습니다. 방관하는 공동체가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암시한 겁니다.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건 울산 현대중공업 사태 때문입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벌써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노조원들이 본사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는 현관의 대형 유리문이 깨지면서 직원 한 명이 실명 위기라고도 합니다. 노조원들은 주주총회가 열릴 빌딩에 난입해 나흘째 점거 중입니다.

전국의 노동단체가 울산으로 집결해 지금 울산은 전쟁 전야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사태를 중재해야 할 여당 소속의 울산시장과 시의회 의장까지 삭발로 파업을 지지하고 나섯습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은 추락하는 조선 산업을 되살릴 국가 차원의 전략적 결정입니다.

회사는 물론 정부까지 고용 보장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노조 측은 회사가 합병하고 물적 분할이 이뤄지면 그 피해를 근로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거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더 큰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공권력은 뒤로 물러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는데 정부도 집권당도 청와대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지금 울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특정 기업이나 노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전체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마치 벼랑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 44'처럼 말이지요. 법이 무너지고 힘이 지배하는 무질서를 용인한다면 그 책임은 결국 헌법의 최종 수호자 대통령에게 물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5월 30일 앵커의 시선은 '강 건너 불, 울산 사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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