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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등록 2019.06.08 11:15

수정 2019.06.08 14:33

[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아직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면 무서워요"

어렵게 만난 심리상담사 성추행 피해자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인터뷰 중간 중간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분을 삭이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기도 했습니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두려움과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웃음기 없는 표정,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세 군데 돌았는데 가장 믿음이 가는 곳이었어요"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렸던 A씨가 신중하게 고른 상담소는 방송에 많이 나온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분위기도 따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찾아간 상담사는 상태가 심각하다며 더 실력 있는 50대 남자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기를 권했습니다. 내담자를 압박하는 방식이지만 효과가 있다는 말에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너도 XX기술을 잘 배울 수 있겠냐'

 

[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B씨의 상담방법은 이상했습니다. A씨에게 지속적으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관계 기술을 배워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은 중국 황제 비빈의 얘기를 하며, '너도 성관계 기술을 잘 배울 수 있겠냐'고 하기도 했고, 우울증에 걸린 여자가 누드모델과 유흥업소 접대부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심리적 문제를 극복하는 내용의 책을 추천하며 자신은 이런 불법적인 방법보다 더 안전한 방법을 심리상담소에서 구현해 심리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압박과 칭찬을 반복하며 B상담사는 A씨 심리상담을 진행했습니다.

한 달쯤 상담이 진행됐을 때 B상담사는 A씨에게 각서를 내밀었습니다.‘상담중 신체접촉이 있어도 법적인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차피 법적으로 문제가 될 행동을 하면 각서가 효력이 없을 것을 알았기에 A씨는 사인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B씨의 행동은 대담해졌습니다. 내면에 죽어있는 감정을 일깨워야 한다며 마주보게 하고 자신과 서로의 몸을 만지게 했습니다. 그 다음 상담에서 B씨는 A씨에게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속옷을 안 벗으려 하자, '아직 극복 못했다' '이래서 치료가 되겠냐'며 집요하게 다 벗으라고 강요했습니다. 싫다고 거부하는 A씨의 양 다리를 벌리고 얼굴을 집어넣어 들여다보기까지 했습니다. 전문가의 치료방법이겠거니, 고칠 수 있다는데 한번 해보자며 거부감을 다스리던 A씨는 점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치료가 끝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심해져 매번 폭식을 했습니다.

"웃으며 보고 있더라고요. 아, 즐기고 있구나"

결정적으로 A씨가 상담이 잘못됐다고 깨달은 건, B상담사가 '본인 몸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거울을 주며 성기를 그리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B씨는 A씨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즐기는 표정이었다고 합니다. 성적인 발언과 접촉이 많았던 상담. A씨는 원래 성적 학대를 받거나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B상담사는 A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뒤 그 행동을 하면 칭찬을 하고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하며 A씨를 길들였습니다.

"1시간에 50만원인데 예약이 밀려서.."

 

[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방송출연 장면이 액자로 걸려있는 상담소.


내부 놀랍게도 B상담사가 운영하는 상담소는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해외에까지 지사를 둘 정도로 사업규모를 키웠고, 강남에 위치한 상담소에는 방송 출연 사진과 유명인과의 인증사진으로 벽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세계 일류'라는 홍보글로 꾸며진 홈페이지에는 '*개월 만에 병이 다 나았다'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더군요. B씨에게 상담을 받는 비용은 회당 무려 50만원에 달했는데, 예약을 하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B상담사가 보낸 A4 6장 분량의 답변.


사실 확인을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B상담사는 며칠 뒤, A4용지 6장 분량의 긴 해명을 보내왔습니다. 요약하자면, 옷을 벗는 것은 다수의 세미나 참석 후 발전시킨 치료 방법이고, 성기를 그리는 것은 여성민우회 성교육 자료집에 나오는 정상적인 치료법이란 겁니다. 하지만 박대령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성기그리기'는 혼자 있을 때 해보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지, 남자 상담사 앞에서 그리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이 상담사가 중고등학교와 정부부처, 기업 출강을 가고, 여전히 방송에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 후학까지 양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B씨가 누군가에게 같은 방식의 치료법을 강요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B씨는 종교 관련 심리학을 전공한 종교인이었습니다. 자격증이 있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1만권의 심리 서적 공부 등 자격증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다며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들과 치료방식을 겨루면 이길 자신 있다고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병원이나 다른 심리상담소에서 치료가 안 된 사람들을 여럿 고쳤다고요. 12주 만에 마음의 병을 고치는 상담법입니다. 물론 그 방법으로 효과가 있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본 윤리마저 무시한 상담법, 위험하지 않을까요?


 

[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심리상담소를 차리려면 별다른 자격요건이 필요 없습니다. 심지어 범죄이력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실제 2017년 상담센터에서 내담자 10여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강모씨는 강간미수 전과자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심리학회 등에선 심리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무자격자들이 상담심리사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을 하고, 그로인한 피해가 크다보니 심리사라는 용어를 아무나 못쓰도록 자격제한을 두자는 취지입니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에서 심리상담 관련 자격증을 국가자격증으로 묶어 관리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상담사 자격에 대한 점검은 필요해보입니다.

 

[취재후 Talk] 옷부터 벗으라는 심리상담사…이게 심리치료법이라고?
 


"의사면허증처럼 당연히 있는 줄 알았어요"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요즘 정신과가 아닌 심리상담소를 많이 찾습니다. 진료기록이 안 남기 때문이지요. 의사만큼의 자격은 당연히 기본으로 갖췄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병원과 달리 상담소는 누구나 차릴 수 있습니다. 상담소를 찾았다가 더 큰 후유증, 피해를 겪지 않으려면 현 제도 하에선 상담 받으려는 사람 스스로가 상담사의 자격을 면밀히 따져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심리상담 관련 학석사 학위는 있는지, 수련 과정을 거쳤는지, 임상심리상담사 등 국가자격증이나 국내 주요학회(한국심리상담학회, 한국상담학회, 한국심리학회 등)에서 지급하는 자격증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상담 관련 민간 자격증만 4600여개라서 인터넷사이트에서 며칠 만에 쉽게 딴 자격증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방송에 많이 나왔다고, 유명인과의 사진이 있다고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민 가려고요, 여기서 못 살겠어요"

다시 피해자의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B상담사와의 상담 이후 A씨는 우울증을 고치긴 커녕 성적 트라우마와 사람에 대한 의심까지 생겼습니다. 한동안 상담소도 믿지 못해 가지 못했습니다. 좋은 상담사를 만나 1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그제야 ‘이런 게 심리상담이구나’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압박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방식. 제가 취재한 상담피해자들도 입을 모아 다른 상담사에게 다시 상담을 받기 전까지 ‘무자격자의 상담방식에 문제가 있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특정 상담방식이 올바른 방법인지 여부는 일반인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일 거라고 스스로를 탓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을 상담받기 때문에 이를 누구에게 묻기도 힘듭니다.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A씨가 인터뷰할 용기를 낸 것도 자신 외에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입니다.

다행히 A씨는 5년 전보다 심리상태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요즘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보면 무서워 깜짝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피해자인 그녀는 이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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