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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리오그란데강의 비극

등록 2019.06.27 21:45

수정 2019.06.27 21:52

공상 액션극 '맨 인 블랙'은 외계인 악당에 맞서는 두 요원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으로 변장해 미국에 들어오려는 불법 외계인을 주인공이 체포하지요. 외계인은 트럭 짐칸에 탄 불법 이민자 틈에 끼여 국경을 넘었습니다. 트럭 운전사에게 국경 경비대가 이민자들에게 얼마씩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두당 백 달러? 2백 달러? 변호사 선임비로 아껴둬" 

국경지대의 어두운 현실을 슬쩍 비튼 장면입니다. 2년 전 텍사스주 마트 주차장에 서 있던 트럭에서 사상자 마흔 명이 발견됐습니다. 38도 폭염에 물도 없이 짐짝처럼 실려 오다 질식한 밀입국자들입니다. 2003년, 백 명이 탄 트레일러에서 열아홉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질식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돈을 내고 트럭을 얻어 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맨몸으로 국경을 넘습니다.

엊그제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다 숨진 엘살바도르 부녀가 그랬습니다. 두 살 딸을 아버지가 셔츠로 감싸 안은 채 쓰러져 있는 사진이 세계인의 충격과 연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4년 전 터키 해변에 떠밀려왔던 시리아 난민 아이 쿠르디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국경 봉쇄정책을 펴면서 체포되는 이민자가 지난달 13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럴수록 무모한 밀입국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지난해 2백여든세 명에 이르렀습니다. 밀입국이 얼마나 위험했으면 멕시코 정부가 이렇게 안전한 국경 넘기 안내책자까지 만들었을까요. 

쿠르디의 죽음으로 반난민 정서가 수그러들었던 유럽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완강합니다. 리오그란데강의 비극을, 자신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민주당 탓으로 돌렸습니다. 난민은 인도주의와 사회문제가 동전의 앞 뒷면처럼 공존하는 쟁점입니다. 그래도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우고 키운 나라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곁에 두고 말했습니다.

"이민은 국가적 특성의 핵심으로 존재해왔고 우리의 전통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끝내 미국 땅을 밟지 못하고 쓰러진 아버지와 딸을 보며 우리에게도 결코 먼 산 불구경일 수만은 없는 난민 문제의 빛과 그늘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6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리오그란데강의 비극'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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