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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셨습니까, 김상조 실장님?"

등록 2019.07.12 09:23

수정 2019.07.12 11:02

"어떤 것을 김 실장이 얘기했는지 알고 있습니다만은 정책실장으로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지난 10일, 국회 대정부질문 도중 이낙연 국무총리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꾸짖다시피 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취재후 Talk]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셨습니까, 김상조 실장님?'
공정거래위원장 이임식 뒤 직원들과 작별인사 하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 김상조, 청와대 입성하다
지난달 21일, 청와대는 새 정책실장에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했습니다. 보통 이임식을 가진 뒤 기자실에 들러 악수만 하고 떠났던 앞선 관례로 달리 단상에 서서 1시간 가까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나서야 정부세종청사를 떠났습니다. 이날 기억에 남은 한 마디는 이랬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홍남기 부총리입니다. 각 부처 장관은 야전사령관입니다. 정책실장의 역할은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병참기지입니다."

홍 부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이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지원하겠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특히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한 패싱 논란이 끊이지 않은 터라 교통정리를 확실히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취재후 Talk]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셨습니까, 김상조 실장님?'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브리핑하는 모습


■ 투 머치 토커, 그리고 실수
임명된 지 5일 만에 가진 청와대 출입기자와의 첫 상견례, 김 실장은 여기서 기자들에게 애교 섞인 경고를 하나 날립니다.

"여러분들, 주의하셔야 할 게 있어요. 제가 공정거래위원장 할 때 기자실 내려가서 간담회하면 보통 1시간을 넘겼습니다. (웃음) 그래서 제 말을 다 받아치는 어떤 기자분이 계셨는데, 한번은 1만 6000자가 넘은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투 머치 토커를 인정한 셈이지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닫고 피하는 취재원에 비하면 차라리 말을 많이 해주는 취재원이 좋긴 합니다. 하지만 말이 많으면 구설도 많습니다.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한 달 뒤인 지난 2017년 7월엔 기자간담회 도중 "나쁜 짓은 금융위원회가 더 많이 하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많이 먹는 게 아닌가"라고 한 발언이 구설에 올라 결국 사과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또 그 해 11월,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지각한 뒤 "재벌들 혼내 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해 또 야당의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취재후 Talk]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셨습니까, 김상조 실장님?'
공정거래위원장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 결정적 장면
지난 3일이었습니다.
김 실장이 이 날 한 말, 이른바 '롱 리스트' 발언이 언론에 대서특필됩니다.

"일본에서만 수입할 수 있는 소재나 부품을 골라냈습니다. 골라내고 나니 '롱 리스트'가 나왔습니다. 그 중 1, 2, 3번째에 해당하는 품목이 바로 일본이 이번에 규제한 품목들입니다."

일본의 무역규제조치 이후 나온 청와대 참모의 발언이었던 것만큼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리고 쏟아진 비판, "알았으면 잘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김 실장은 한 종편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19분 23초 동안 사회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사회자가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1, ,2, 3위를 예측을 하고 그것이 잘 맞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고요. 이렇게 됐을 때 그러면 우리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그 대책을 예상하면서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김 실장은 기업에 잘 준비하라고 말했다면서도 정부의 준비가 부족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런 발언이 일본 무역규제를 풀어나가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업들이 난감한 상황에 빠져있는데, 규제품목을 맞혔다며 신나있는 모습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수도 있겠죠.

 

[취재후 Talk]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셨습니까, 김상조 실장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하는 이낙연 국무총리


■ 총리의 일갈
역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면서 '미리 알고 있었다'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지 않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를 대표해 질문을 받은 이낙연 총리로서는 아픈 질문이었죠. 대정부질문이 끝나면 '총리의 사이다 발언'이 종종 회자되곤 했지만 이번엔 김 실장을 질책하는 일갈이 남았습니다.

총리의 일갈은 단순히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질책이 아닐 겁니다. 청와대 참모로서의 언행 모두에 대한 일종의 경고일 겁니다. 김 실장이 말한대로 경제 컨트롤타워는 홍남기 부총리이고, 각 장관이 야전사령관이라면 전방보다는 후방에서의 역할이 더 많을 겁니다. 병참기지로서의 후방지원과 조정의 역할에 더 집중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더 도움이 되겠죠.

 

[취재후 Talk]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셨습니까, 김상조 실장님?'
중소기업계 간담회에 참석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 다시 듣는 '침묵의 소리'
지난해 말,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사이먼&가펑클이 부른 '침묵의 소리(The Sounds of Silence)'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둘로 쪼개져 소통이 안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떠들지만 말고 대화하고, 흘려 듣지 말고 경청하자는 의미로 이 노래를 골랐다고 했습니다.

총리가 대정부질문을 받던 날, 김 실장은 취임 후 첫 방문 경제단체로 중소기업계를 선택했습니다. 현장기자의 말을 빌리면 "20분 정도 말한 다음 너무 많이 말하면 청와대 브리핑에서 할 말이 없을테니 이쯤할게요.'라고 말했답니다. 저는 '침묵의 소리'가 한번 더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실장님께 한 구절을 다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사람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 떠들기만 하죠,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사람들은 경청하진 않고 흘려들을 뿐.

- 사이먼&가펑클 '침묵의 소리(The Sounds of Silence)' 中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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