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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아이치현의 소녀상

등록 2019.08.05 21:48

수정 2019.08.05 21:59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는 네 차례, 12년에 걸쳐 한국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대사 시절 동일본 대지진 때 "가족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도와준 한국은 진정한 친구" 라고 했습니다. 귀국하면서는 "양국간 더 깊은 상호 이해에 힘쓰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랬던 그가 재작년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좋았다'는 책을 냈습니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 탄핵에 대해 "이성보다 감정으로 움직이는 한국인의 나쁜 면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최악의 대통령, 친북반일 포퓰리스트"라고 모독했습니다.

일본 극우세력이 한국을 비하하는 이른바 혐한론을 들고나온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아베 정권 들어선 뒤로는 정부 관료 중에서도 말을 함부로 하는 인물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무토 전 대사처럼 말입니다.

일본 외무차관은 엊그제 문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정상이 아니다. 무례하다"고 했습니다. 고위 외교 관료의 이런 발언보다 더 무례한 일은 없습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일이지만, 지금 아베 정부에서 이성적인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차대전 때 독일과 영국은 대학도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하이델베르크와 괴팅겐만은 서로 폭격하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에도 불문율이 있듯, 한일관계가 아무리 틀어져도 지켜야 할 최소한 법도가 있습니다.

일본 아이치현 국제미술제에서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사건도 관료-정치인과 극우세력의 합작품입니다. 극우는 방화와 테러 위협 같은 협박을 퍼부었고, 자민당과 관방장관은 예술제에 들어간 정부 지원금을 문제 삼았습니다. 아이치현 지사는 사흘 만에 전시회를 중단하면서 "있어서는 안 될 협박과 행정기관 간섭"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전시회는 소녀상 외에도 일왕 제도, 오키나와 미군기지처럼 표현의 자유를 위협받았던 민감한 주제를 모았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표현의 부자유 전' 이었지요. 그런 전시회가 좌절되는 사태를 보며 일본 예술인과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가 무너졌다"고 개탄했습니다. 소녀상에 둘러친 가림막은 양식 있는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8월 5일 앵커의 시선은 '아이치현의 소녀상'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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