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씁쓸한 엿 맛

등록 2019.09.05 21:45

수정 2019.09.05 22:44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축구 대표팀이 인천공항에 내렸습니다. 풀이 죽은 선수들이 기자회견장에 선 순간 호박엿 사탕이 무더기로 날아듭니다.

"국민의 마음이다. 국민의 마음, 엿 먹어라!"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던 막내 손흥민 선수가 발아래 나뒹구는 엿을 보며 중얼거립니다.

"엿을 먹어야 되나요?"

'엿 먹어라'는 국어사전에 '남을 골탕 먹이거나 속여 넘길 때 속되게 하는 말'로 올라 있습니다. 1964년 입시 오답사건 '무즙 파동'때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던지며 항의한 데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한말부터 쓰던 말이라고 합니다. 입안에 달라붙는 엿을 물고 있으면 제대로 말을 못하듯 '입 다물라'는 겁니다.

대검찰청에 지난 사흘 쉰 개가 넘는 택배가 배달돼 이렇게 쌓여 있습니다. 조국사태 의혹을 수사 중인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온 엿입니다. "엿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라고 정중한 인사가 붙어 있기도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안 봐도 환합니다. 온라인에는 윤 총장에게 엿을 보내자는 글이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대검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철저히 하라는 의사표시로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윤 총장도 "나는 호박엿을 좋아하는데 다들 생강엿을 보냈더라"며 웃어넘겼다고 합니다. 아마 쓴웃음 이었을 겁니다.

검찰 압수수색이 시작된 이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검색어 1위 만들기도 쓴웃음을 부릅니다. 지지층에 보내는 상징적 메시지로 이해하기는 합니다만 이런 일은 사실 여론 조작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겁니다.

윤석열 총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 정부 적폐 청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사법 쿠데타 주범'으로 몰린 이 상황이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느닷없이 노골적으로 쉽게 얼굴을 바꾸는 행태를 가리켜 손바닥 뒤집듯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것이 여반장, 즉 손바닥 뒤집기라곤 합니다만 이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시성 두보는 그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손 뒤집으면 구름 일고, 손 덮으면 비 내리니, 분분하고 경박한 자들을 어찌 다 헤아릴까…"

9월 5일 앵커의 시선은 '씁쓸한 엿 맛'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