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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태풍 전야의 조국 호

등록 2019.09.06 21:48

수정 2019.09.06 21:53

땅끝 해남에서 뱃길로 40분을 가는 섬 보길도. 막다른 동쪽 끝 암벽에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든세 살 늙은 몸이, 거칠고 먼 바닷길을 가노라… 대궐에 계신 임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외로이 충정에 겨워 흐느끼네."

문신이자 학자, 노론의 영수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우암 송시열이 제주도 유배길에 남긴 시입니다. 말년에 임금에 밉보여 버려지면서도 충성을 다짐했지만 사약을 면치 못했지요.

보길도는 그의 경쟁자 고산 윤선도가 은둔해 살던 곳입니다. 고산은 병자호란 때 임금의 굴욕에 환멸을 느끼고 권력을 등진 뒤 어부사시사를 읊으며 여생을 누렸지요.

그를 모함해 유배 보냈던 우암이 결국엔 같은 처지가 돼 보길도에서 신세를 한탄한 겁니다.

평생 권력 곁에서 영화를 누린 우암과, 권력을 내던지고 자신의 세상을 지켰던 고산, 그 권력무상의 역설이 보길도에서 교차합니다.

여권의 조국 감싸기가 정권과 검찰의 정면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중요 의혹을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결론 내 발표한 것도, 검찰이 수사개입을 거론하며 공개 반박한 것도 초유의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청와대에서 "검찰은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으로 오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 시각이 만에 하나 맞다고 치고 질문해봅니다.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 조국밖에 없는 걸까요. 말과 행동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에게 인권과 법질서를 맡겨도 되는 걸까요. 검찰 조사를 받는 법무장관이 될지라도 꼭 장관을 시켜야 하는 걸까요.

당나라 시인이자 사상가 한유는 아침에 임금에게 직언했다가 저녁에 좌천됐습니다. 8천리 떨어진 벽지로 쫓겨 가면서도 그는 기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임금 위해 나쁜 일을 제거하려 했을 뿐. 내 죽거든 유골을 장강 가에 거두어다오…"

권력 핵심부와 검찰 사이 초유의 충돌은 검찰총장이기 앞서 검사 윤석열의 성품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태풍이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심장부를 겨누는 이 태풍도 시작은 작은 열대성 저기압이었습니다. 조국 사태는 진작에 버렸어야 할 미련과 집착이 키운 태풍입니다.

9월 6일 앵커의 시선은 '태풍 전야의 조국 호'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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