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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국민을 바보로 아십니까?

등록 2019.10.29 21:48

수정 2019.10.29 22:03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한 쌍의 해태상이 지키고 있습니다. 1975년 의사당 완공 때 제과기업 해태그룹이 기증했지요. 그러면서 해태상 아래 땅속에 국산 와인 일흔 두 병을 묻어 뒀습니다. 국회와 해태그룹이 백년 뒤 2075년에 꺼내 마시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 의회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울 거라는 기대를 담아 이렇게 했다고 하는데, 혹시 와인이 식초가 돼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은 흔히 :선거만 아니면 의원 할 만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진담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전직 의원이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하는 재미'를 꼽았습니다. 마음놓고 늦잠 자기, 국회 회의 빼먹기, 회의 중에 자리뜨기, 평일 골프치기… 몇 년 전 조사에서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는 의원이 열에 아홉이나 됐습니다. 그러나 국민 열에 아홉은 국회를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의당이 국회의원 정수 늘리기에 불을 지폈습니다. 심상정 대표가 현재 3백석인 의원정수를 3백30석으로 늘리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도 맞장구를 치고 나섰습니다. 이 세 당과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국민에게 했던 3백석 유지 약속을 반년 만에 깨버린 겁니다.

당시 정개특위 위원장이던 심상정 대표는 "국민이 늘 의원을 늘리지 말라고 말씀하셨기에 3백석 이내에서 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정의당은 선거법 공조를 위해 민주당 편에 섰고, 조국 사태 때도 끝내 '데스노트'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시 당리당략에 따라 의원수를 늘리자는 주장을 내놨습니다. 공수처법 처리가 급한 민주당도 이 요구를 끝내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관측이 많습니다.

국회가 제대로 할 일을 다 한다면 의원 몇 명 더 늘리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20대 국회는 법안처리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국회였습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커녕 이해타산에 눈이 멀어 의원 정수를 늘리겠다고 합니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고서는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해태상 아래 묻어둔 와인을 꺼내 마지자고 약속한 시간은 아직 56년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56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우리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해태상 아래 와인은 그냥 식초가 되도록 놔두는 게 낫겠습니다.

10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국민을 바보로 아십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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