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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빛바랜 '원자력의 날'…진흥위 공백에 월성 1호기 논란 가열

등록 2019.12.28 14:38

수정 2019.12.28 14:57

[취재후 Talk] 빛바랜 '원자력의 날'…진흥위 공백에 월성 1호기 논란 가열

사진은 지난 2012년 11월 13일 월성 1호기의 모습. / 연합뉴스

■ '의미 없는' 원자력진흥위원회…한 달 째 '공석'

"위원회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관뒀어요."

두 달 전 원자력진흥위원회(원진위) 위촉직 위원을 그만 둔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축제여야 할 '원자력의 날'이지만 원로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원진위는 원자력진흥법에 따라 원자력 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국무총리와 관계부처 장관, 민간위원 등 11인으로 구성된다. 해마다 한 두 차례씩 회의가 열렸지만 이번 정부 들어선 달랐다. 2016년 말 임명된 뒤 3년 임기 동안 단 한 번도 모이지 않았다. 결국 지난 10월 성 교수와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표를 냈다.
▶ 관련기사 : [단독] 무늬뿐인 '원자력진흥위'…탈원전 2년간 회의 '0'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4/2019062490107.html

두 위원이 사퇴한 지 한 달이 지난 11월 18일,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회의가 열렸다. 3년 만이었다. 이마저도 서면회의였다. 의제는 미래 방사선 산업창출 전략과 미래 선도 원자력 기술역량 확보 방안. 한 위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안건들"이라며 "더 시급한 현안이 쌓여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자력계의 해묵은 현안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나 뜨거운 감자인 신한울 3·4호기 문제 등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서면회의를 마지막으로 위촉직인 민간 위원들의 임기는 종료됐다. 11월 20일부였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연혜(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민간위원 6명의 자리는 아직까지도 공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후임 후보를 마련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추천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백 장기화 우려에 대해선 "현재 시급한 법정계획 수요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만 했다.

■ "월성 1호기 조기폐쇄는 위원회 논의 사항"

불과 나흘 전 월성 1호기는 수명을 3년이나 남겨놓고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보다 시급한 사안이 있을까. 원자력업계에서는 이번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때 원진위를 거치지 않은 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원자력진흥법은 원자력 관련 가장 상위법인데다, 이 법에 따라 원진위에서 원자력 이용에 관한 모든 중요사항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위원은 "월성 1호기 조기폐쇄만큼 중요한 사안이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성풍현 교수는 "원진위는 애초 원자력위원회에서 분리된 만큼, 진흥만 따질 게 아니라 원자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 공동대표)도 "원진위를 거치지 않은 이번 결정은 정치적인 결정으로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뜨거워지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축소' 논란

"안전엔 문제가 없지만 경제성이 없어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한국수력원자력

"경제성을 따지는 감사원 감사와 달리 안전성만 따져 결정했다" -지난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이 모순된, 무책임한 결론에 원자력업계는 물론 온 나라가 들썩였다. 감사원의 결론이 채 나오기도 전 원안위가 폐쇄를 강행했다는 사실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다. 지난 9월 국회는 한수원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최근 한수원이 지난해 6월 경제성 평가용역을 맡긴 삼덕회계법인 보고서에서 '계속 가동하는 것이 경제성이 있다'는 결론이 담긴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보고서에는 "중립적 시나리오(이용률 60%)에서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즉시 정지하는 것에 비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보고서는 경제성이 0이 되는 이용률을 54.4%로 추정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 같은 보고서도 무시했다. 대신 2017년 월성 1호기 이용률이 40.6%였다는 것을 구실 삼아 조기 폐쇄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 같은 경제성 논란에 더욱 불을 붙일 자료가 새롭게 공개됐다. 한수원이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리기 불과 1년 전인 2017년, 월성 1호기의 이용률이 81%에 달해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자체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유섭(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2017년 7월 '신고리 5·6호기 건설 논의를 위한 공론화 설명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 자료에서 2016년 12월 이후 월성 1호기의 연간 전력 판매량이 482만MWh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월성 1호기의 이용률을 81%로 가정한 결과였다.

하지만 채 1년도 안 지난 2018년 6월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 용역을 맡은 삼덕회계법인은 보고서에서 월성 1호기의 연간 전력 판매량이 2018~2022년까지 190만~389만MWh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했다. 공론화 때 한수원 자체 전망치보다 93만~292만MWh 적은 수치다. 이렇게 낮춰 잡아도 계속 가동하는 게 즉시 정지하는 것보다 이익이란 분석이 나온 것이다.

■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후폭풍

후폭풍은 거세다. 원안위 결정에 자유한국당과 한수원 노조는 즉각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은 원안위 위원들을 직권남용,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원안위 결정에 대해선 효력정지 가처분을 법원에 낼 것이라고도 했다. 한수원 노조도 들끓는 분위기다. 한수원 노조도 원안위 결정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하기 위해 법률 검토에 나섰다.

학계에서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교수 모임인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에교협)'는 지난 25일 '정부가 원안위의 결정을 철회하고 월성 1호기 재가동을 추진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에교협은 전국 60여 개 대학 교수 225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단체다. 에교협은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면 연간 2500억 이상의 LNG 발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연간 400만t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1600억 원의 사회적 비용을 추가로 절감할 수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학계, 노동계, 시민단체가 한 데 모인 원자력정책연대는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앞서 원자력연대는 지난 16일 3076명의 국민서명과 후원을 받아 신한울 3·4호기 건설 취소를 언급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원자력정책연대는 "(원안위가) 감사원의 권위를 능멸하고, 이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취재후 Talk] 빛바랜 '원자력의 날'…진흥위 공백에 월성 1호기 논란 가열
산업부, 원자력의 날 기념식 개최 / 연합뉴스

■ 말 아끼는 정부…우울한 원자력의 날

어제(27일)는 UAE에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을 수출한 지 10년이 되는, '원자력의 날'이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자력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에 주관부처 장관이 참석한 것은 3년 만이자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 성 장관은 격려사를 통해 "올해는 바라카 원전 정비사업 수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 인증 취득, 신고리 4호기 상업 운전 개시 등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또 "원자력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면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산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작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그제(26일) 성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 산업부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월성 1호기는 한수원이 경제성을 바탕으로 결정을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고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 저희 부서(산업부)가 직접 언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가라앉은 원자력업계를 의식해서일까. 3년 만에 장관이 '원자력의 날' 행사에 등장했고, 작년(80점) 보다 많은 141점의 정부 포상까지 이뤄졌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기술 자립 30여 년, 수출 쾌거 10년 만에 무너져가는 원자력을 보니 슬프기 그지없다"며 "몇 년 후에는 탈원전 폐지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고 새 출발 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어제 행사에 원자력 전문가 다수는 불참했다. 참석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 귓가를 맴돈다. "누가 가고 싶겠어요. 죽은 자식 생일 잔치에…."

/ 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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