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자비는 없다

등록 2020.01.09 21:45

문제적 인간 닉슨의 내면을 파고든 영화 '닉슨'입니다.

"이 나라는 내 손 안에 있어!"

워터게이트로 궁지에 몰리자 닉슨은 수중의 권력, 인사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해임해! 아치볼드 콕스 말이야!"
"그건 법무부 소관입니다."
"법무장관한테 시켜!"
"사임할 겁니다."
"그럼, 그 자도 해임해!"

실제로 법무장관과 수석 차관이 특별검사 해임을 거부하며 차례로 사임했고 다른 차관이 특검을 해임했습니다. 닉슨이 수사의 칼날을 부러뜨리려 했던 사법 방해, 이른바 '토요일 밤의 대학살'은 그를 파멸시킨 결정적 칼날로 되돌아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곤욕을 치렀습니다.

"제 측근들은 수백만 원짜리까지 다 조사하는 모양입니다. 수백 명이 수백 회 소환됐고 압수수색이 또 수백 회 이뤄지고…"

하지만 검찰조직에 손을 대지 않았고 오히려 감쌌습니다.

"소름이 끼친다고 할 만큼 검찰은 유능했습니다…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 지휘 아래 안희정, 강금원 씨를 구속했던 검사가 윤석열 검찰총장입니다.

윤석열 고립, 윤석열 사단 와해, 대학살… 어젯밤 검찰 인사를 보도하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표현들이 이렇습니다. 그렇듯 청와대를 겨누는 세 사건 수사의 지휘 검사장들과 윤 총장의 대검 참모들이 빠짐없이 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자리에는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대거 중용됐습니다.

검찰개혁이란 무엇입니까. 과문한 탓인진 모르겠으나 검찰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고, 검찰을 정권이 수족처럼 부리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번 인사를 보면 둘 중에 후자,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허울 좋은 말뿐인지를 절감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번 인사는 검찰 개혁이 얼마나 더 시급한지를 확연히 보여줬습니다.

인사를 앞두고 검찰총장이 버티자 청와대는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로 압박했습니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사권은 정당하고 공정하게 행사돼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여럿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매지 않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할 화급한 사정이 과연 뭐였을까요? 정치 9단으로 불렸던 김종필 전 총리는 "권력은 50퍼센트만 행사해야 한다"는 어록을 남겼습니다.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 욕망을 자제하기 어렵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는 우리 역사가 이미 여러 차례 입증한 바 있습니다.

1월 9일 앵커의 시선은 '자비는 없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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