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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등록 2020.10.15 17:45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2017년 8월 2일 김동연 前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번째)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 논란의 시작

2017년 8월 2일,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합니다. 정부는 1년에 한 번씩 과세형평과 세수확보, 경기여건 등을 감안해 세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대주주 기준 변경'은 여기서 처음 나왔습니다.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의 말입니다.

"상장주식에 대해서 양도소득세를 대주주에 대해서만 과세를 하고 있는데, 현재 스케줄에 따라서 내년 4월부터 15억, 2020년 4월부터 10억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추가해서 2021년 4월부터는 3억 원 초과를 확대해서 이 상장주식에 대한 과세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알려진대로 대주주의 기준을 확대하는 내용입니다. 3년 전 발표된 정책이 왜 이제와서 논란이 됐을까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해임청원까지 촉발시킨 이번 사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내년 4월부터 변경되는 대주주의 기준 / TV조선뉴스 캡쳐


■ 대주주가 뭐길래


국어사전을 펴보겠습니다. 대주주의 사전적 뜻은 "한 회사의 주식 가운데 많은 몫을 가지고 있는 주주"입니다. 정부는 현재 코스피 기준으로 주식 1% 또는 10억 원 이상, 코스닥 기준으로 주식 2% 또는 10억 이상 보유했을 때 대주주로 보고 양도소득세 22~33%를 매깁니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이 기준을 3억 원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인데요, 안내던 세금을 내게 됐으니 일단 조세저항에 부딪힌 겁니다.

그런데 한 종목을 3억 원 이상 갖고 있다고 대주주로 판단하는 정부의 기준이 합리적일까요. 지난 7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통 사람은 대주주라고 하면 경영권을 지배할 만큼 지분을 보유한 재벌총수나 오너를 떠올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정한 기준이 보통 사람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말이겠죠.

 


■ 왜 3억을 고집

그런데 왜 3억 원일까요.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대주주의 기준으로 정한 3억 원에 대한 근거입니다. 기재부는 여기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3억 원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온 건지 알지 못하니 정부나 투자자나 서로 답답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현재 대주주가 1만 2600명인데, 변경기준을 적용하면 9만 3500명으로 늘어납니다. 단번에 7배가 넘게 늘어나는 겁니다. 이 기준은 2018년 25억 원에서 2019년 15억 원, 올해 10억 원 등으로 계속 강화되어 왔는데, 전문가들은 그 속도가 빠르다고 지적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 3억 원 기준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과 과세형평을 내세우며 변경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해진 건지도 모르는 숫자를 독불장군처럼 밀고 나가는 게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반 투자자들도 뿔이 난 것이겠죠.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2017년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상장주식 대주주 범위 확대 / 기획재정부


■ 현대판 연좌제


여기만 들어도 화가 나는데 또 기름을 부은 게 있습니다. 바로 대주주 세대합산 범위였습니다. 주식을 산 본인과 배우자, 여기에 조부모와 손자 등 직계존비속의 주식까지 합쳐 3억 원이 넘으면 대주주로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대판 연좌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 추석 연휴에 "아버지, 삼성전자 주식 가지고 계세요?"라고 물어봐야 한다는 농담 섞인 말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세대합산을 해야할까요. 바로 재벌들 때문입니다. 재벌 총수가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내야하는 세금이 늘어나니까 배우자와 자식, 부모 등의 명의로 쪼개 차명주식을 보유한 것이죠. 그래서 세금 회피하려는 이런 꼼수 때문에 세대합산을 해서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재벌에게 적용하던 조항을 일반 투자자들에게까지 적용하는 게 맞는 정책일까요?

결국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한발 물러섰습니다. 기재부 국감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거세게 비판하자 세대합산을 개인별 합산으로 전환하는 걸 검토한다고 밝힌 겁니다. 아마도 '현대판 연좌제'는 없던 일이 될 듯 합니다.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지난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 왜 이제와서 그래

이번 기재부 국정감사장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에게 대주주 과세대상을 3억 원으로 확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쏟아집니다. 홍 부총리가 대답합니다.

"이건 정부가 지금 결정한 게 아니고 2017년 하반기에 결정이 된 사안입니다."

이미 3년 전에 결정된 사안인데, 그 때는 아무 말도 안하더니 왜 이제와서야 이러느냐는 숨은 뜻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그랬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대주주 과세 강화로 '큰손들 증시서 빠질까' 우려 (뉴스1, 2017.08.10)
-여차하면 대주주…직계 존비속 지분도 합산 (한국경제TV, 2017.08.18)
-대주주 범위 확대, 긴장하는 '사모 운용사' (더벨, 2017.10.13)

2017년에도 지금과 똑같은 우려가 터져나왔습니다. 황영기 당시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은 "대주주 범위를 늘리는 속도가 빠르다"고 말하면서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걸까요? 정책 발표 직후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지난 3년 동안 눈 닫고 귀 닫고 버티다 결국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요? 이제와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 때도, 지금도 똑같은 논란이 있었고, 정부가 외면한 겁니다.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지난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 과세형평이 뭐길래


그럼에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책 수정없이 그대로 밀어붙이면 이유는 뭘까요. 국감에서 홍 부총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안은 증세 목적이 없습니다. 과세형평 차원에서 하는 겁니다." 대주주 범위를 3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건 우선 정부의 세수확보 차원에서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세금이 얼마나 더 들어올지 계산도 안된 상황입니다. 그러면 과세형평만 남죠. 세금을 내야하는데 내지 않는 곳이 있다면 과세를 해야합니다. 그것이 과세형평이죠. 나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에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데, 누군가 세금을 안내고 있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들겠죠. 그런데 단적으로 지금 한 종목을 10억 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들이 3억 원 이상 보유한 사람들도 세금을 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을까요? 저 사람들은 세금을 안내는데 우리만 내고 있으니 저들에게도 과세하라고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식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안된다며 불만을 내비치고 있을 겁니다. 모든 정책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익을 훼손하지 않는 한 국민의 편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대주주 범위를 늘려서 정부가 큰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니고, 현재 대주주들의 과세형평 욕구를 채워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 투자자들의 욕구를 꺾고, 주식시장의 침체를 가져온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도대체 지금 '과세형평'이 얼마나 귀중한 가치이길래 못바꾼다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지난달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조선일보DB


■ 이대로 가면


대주주 범위 확대가 주식시장의 하락세를 가져올 거란 관측이 많습니다. 실제로 대주주 요건이 강화되기 직전 연말에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던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017년 12월엔 5조 1314억 원, 2019년엔 4조 8000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최근 5년을 보더라도 개인 투자자들은 1~11월엔 월평균 1900억 원을 순매수했지만 12월엔 2조 9000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또 올해는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일어나면서 20~30대의 주식투자가 크게 늘었고, 실제 개인 투자자가 57조 원을 순매수하며 주식시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주주 범위 확대로 인한 시장충격은 예상보다 더 클거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대로 가면 연말에 10~15조 원 규모의 매도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예측까지 있습니다.

여기에다 2023년부터는 대주주인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주식으로 일정 금액 이상 차익이 발생하면 무조건 세금을 물립니다. 2017년 세법개정안 당시에는 없던 법이 중간에 생긴 것이죠. 현재 정책일정대로 가면 저절로 과세범위에 들어올텐데, 굳이 이런 비판을 감수해가며 정책을 밀어붙여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 듭니다.

 

[취재후 Talk] '대주주 3억이 뭐길래' 독불장군이 된 홍남기 부총리
청와대 국민청원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해임청원이 올라와있다. / 청와대 홈페이지


■ 해임청원의 무게


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편익으로 흘러야 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공약도 환경과 여건이 변하면 뒤집혀 왔는데,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정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책의 일관성은 일말의 수정도 없이 원안 그대로 밀어붙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맞아야 하고,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유연해야 합니다.

이달 5일, 청와대엔 홍남기 부총리 해임청원이 올라왔고, 현재 10만 명이 넘게 동의했습니다. 6일 뒤인 11일, 홍 부총리는 역대 두번째 최장수 경제부총리 타이틀 획득했습니다. 지금 홍남기 부총리의 한 손엔 '해임청원'이, 다른 한 손엔 '역대 두번째 최장수 경제부총리' 타이틀이 놓여 있습니다. 어느 쪽 무게가 더 무거운지 한번 재보시기 바랍니다.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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