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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윤석열 잘라내기'가 '검찰개혁'이라는 세계관

등록 2020.12.02 10:43

수정 2020.12.02 10:52

[취재후 Talk] '윤석열 잘라내기'가 '검찰개혁'이라는 세계관

/ 연합뉴스

이젠 고전이 된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에게는 수상한 일들이 주변에서 계속 일어납니다. 모니터에 '흰 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시지가 뜨지 않나, 수상한 전화기로 전화가 걸려오질 않나. 네오가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 계기는 '빨간약'을 선택했기 때문이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이미 그 전부터 잇따라 나타났던 수상한 징후들 때문이었습니다.

■ 수상한 징후 1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지난달 2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 청구를 할 만한 일인지, 또 지금이 이럴 때인지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조 의원은 예상대로 '양념'을 호되게 당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추미애 장관 쪽이라, 그래서 '우리 사람'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검사들도 잇따라 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조 의원이 원래 딴소리 좋아하는 '조금박해' 중 한 명이니까. 또 추 장관 측 인사들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마지막 예우' 차원의 행동이거니, 혹은 태생이 원래 개혁대상인 검찰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인정.

■ 수상한 징후 2

지난달 26일, 여론조사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조사한 결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에 대해 응답자 56.3%가 추 장관 조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잘한 일'이라는 대답은 38.8%에 그쳤습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무수히 쏟아지는 여론조사 가운데 하나지만, 그래도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구나'라는 정도의 유연성은 생길 법도 합니다. 정상적인 사고 체계라면 말이죠.

■ 수상한 징후 3

여론조사란 게 원래 오차가 있을 수 있고, 또 일반 국민들로선 법리 해석이나 사실관계 확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결정적으로 수상한 징후가 또 이어집니다.

학계 인사와 전문가들이 모인 법무부 감사위원회가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청구와 직무정지가 모두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참석자 7명 모두가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란 겁니다. 감사위에 참석했던 한 위원은 "위원들이 들어갈 때는 의견이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하도 엉망진창이다보니까 결국 만장일치가 돼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만도 골치 아픈데, 독립된 사법기관인 행정법원까지 직무배제된 윤석열 총장의 업무 복귀를 결정하는 판단을 내리네요. 게다가 판사가 진보 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의 후신격인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라니. 아니,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러는 것이야?

보통 이쯤 되면 심각하게 의심해봐야 합니다. 우리 편이라 생각했던 동료 의원과 친추(親秋) 검사들은 물론 국민의 56%, 감사위원 7명 전원에 사법부까지, 이들이 단체로 어떻게 된 것인가. 아니면 윤 총장을 잘라내는 게 정의로운 검찰개혁이라고 믿었던 내 세계관에 심대한 오류가 있는 것인가. 확률적으로 어느 쪽이 맞을지는 자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여전히 신념에 찬 글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특권세력의 부당한 저항을 국민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검찰, 조폭검찰'의 탄식을 불러왔다."

"우여곡절이 있어도 결국엔 국민이 승리합니다."

결국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더 이상 위 아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해졌을 정도로 '매트릭스' 안에 너무 오래 계셨거나 아니면 그 세계가 허구라는 걸 알면서도 '매트릭스' 강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스미스 요원이거나. 스미스 요원이 자기복제까지 해가며 주인공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매트릭스'가 없어지면 스미스 요원 자신도 사라져버릴테니까요. / 서주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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