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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폭주기관차

등록 2020.12.02 21:56

수정 2020.12.02 22:07

영화 '대호'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최고 포수의 만남을 그립니다. 호피를 탐낸 일본 고관이 지리산 큰 범, 대호를 잡으려고 군사작전 벌이듯 산을 샅샅이 뒤집니다. 하지만 명포수 만덕은 사냥 명령을 거부합니다.

"어느 산이 됐건 산군님들은 건드리는 게 아니여…"

최민식이 연기한 '명량'과 '대호'는 닮았습니다. 파면당했던 이순신이 수군 지휘권을 되찾아 최후의 결전에 임했듯, 만덕은 대호의 운명을 일본군 손아귀에 내맡기지 않으려고 총을 잡습니다. 대호와 만덕 역시, 야만과 광기의 시대에 외롭게 맞선 존재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김홍도의 걸작 '송하 맹호도'입니다.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덮칠 것만 같습니다. 그 맹호출림의 위엄과 기개가 담긴 조선 최고 초상화가 윤두서 자화상이지요.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비굴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서려 있습니다.

직무정지 일주일 만에 자리로 돌아온 윤석열 총장의 일성은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국 검찰 공무원에게는 "정치 중립을 지키고 공정한 법 집행으로 국민의 검찰이 되자"고 했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말이 너무나 크게 들리는 이상한 시절입니다. 검찰 개혁의 대의명분 역시 이 말 속에 다 들어있는데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게 들리는 것은 또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윤석열 찍어내기에 동원됐던 온갖 명분과 낙인, 갖은 위법과 탈법의 민낯이 너무나도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당혹스러울 지경입니다.

법원은 "총장 직무배제가 검찰의 독립과 중립성을 보장하는 법 취지를 완전히 없애버렸다"고 했습니다. "법무장관의 총장 지휘감독권은 법 질서 수호를 위해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도 했지요. 앞서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윤 총장에 대한 모든 조치와 수사가 부적절하다고 의결했습니다.

윤 총장 징계위원회를 주재해야 할 법무차관도 사임했습니다. 모두가 추미애 장관의 일방적 폭주에 대한 심판과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오늘 곧바로 법무차관 임명을 서둘렀습니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치우고 진격하는 군사작전을 닮았습니다.

그동안 여권은 이 문제를 검찰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윤석열을 쫓아내고 공수처를 출범시키면 검찰개혁을 완수했다고 축배를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유효한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그것이 검찰개혁입니까? 그렇게 하면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됩니까? 그렇게 주장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믿을까요?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가 결국 어디로 향할지 현명한 국민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12월 2일 앵커의 시선은 '폭주기관차'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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