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전체

[취재후 Talk] 문재인·추미애·이낙연도 이름 올린 '법무장관 해임案' 보니

등록 2020.12.03 15:09

수정 2020.12.03 15:35

"법무부 장관은 …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감찰지시를 발표하고 진술과 정황자료만으로 사표수리를 건의하는 등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에 대해 실질적인 사퇴를 종용하여 검찰의 독립성을 심대하게 침해하였음"

"법무부 장관은 … 무리한 감찰과 빈약한 근거에 따른 사실상의 해임을 함으로써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견지해야만 하는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두려는 정치적 의도에 영합하는 처사라 할 것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와 정당한 검찰권의 행사를 보장해주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수사팀 교체와 감찰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처사로 좌절시키고,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심대히 훼손시켰다 할 것임"

"헌법을 수호해야할 법무부장관의 직분과 책임을 망각한 처사라 할 것임"

검찰이나 국민의힘 쪽에서 나온 문장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 제63조에 따라 법무부 장관의 해임을 건의하며 적시한 제안 이유들이다.

이들은 법무장관의 행위가 검찰청법 8조의 취지에 반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 7조와 국가공무원법 65조를 위반했으며, 형법상 직권남용죄를 범했다면서 법무장관이 '수사의 대상'이라고 규정했다.

해임건의안 말미엔 "법무부장관이 퇴임하지 않는 한, 부당한 외압에 휘둘리고, 정치권의 눈치보기에 연연하며,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는 검찰의 행태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면서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권위주의 정권의 부활로 귀결될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음"이란 표현도 들어갔다.

발의자 명단에 적힌 126명 의원 가운데 한 명은 대통령이 됐고, 다른 한 명은 국무총리, 또 다른 이는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돼 현재 그 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 명은 지금 이 순간 본인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검찰총장을 향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다.

 

[취재후 Talk] 문재인·추미애·이낙연도 이름 올린 '법무장관 해임案' 보니
2014년 2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채(왼쪽)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조선일보DB


2014년 2월 7일 발의된 '황교안 법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다시 꺼내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당론에 따라 소속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린 안이기 때문에 문재인·정세균·이낙연·노영민·추미애 등 의원 개개인의 주장이 일일이 반영되기 어려웠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1600여 글자로 적힌 건의안에서 특정 이름과 조직명 100글자 정도만 바꾸면, 현재 국민의힘이 이를 '재활용'해서 '추미애 장관 해임건의안'이란 이름으로 제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논리 전개가 이어진다.

심지어 6년여 전 법무장관 해임을 건의할 때도 '윤석열'이란 이름 석자가 '교체된 수사팀장'이란 피해자로 등장하는 건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로 회자되는 이 사안을 단순히 현 여권의 '내로남불'로 치부하기엔 여야의 '모순(矛盾) 정치'가 심각한 수준이다.

 

[취재후 Talk] 문재인·추미애·이낙연도 이름 올린 '법무장관 해임案' 보니
2014년 2월 7일 민주당 의원들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 해임건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 조선일보DB


2014년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라며 "민주당의 주장은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정치가 직접적으로 검찰 수사에 개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제까지 여야가 주장하고 노력했던 검찰에의 정치 불개입 원칙을 무시하고 역행하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이 또한 지금 민주당 대변인이 그대로 인용해도 손색이 없는 문구다.

정권교체를 세 차례 겪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구도를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닌, 그저 '여'와 '야'의 대결로 보는 시각이 있다.

여야가 서로 '공수교대'를 하면 사람만 바뀐 채 각 세력이 과거 '적들의 언어'를 가져와 그대로 공방을 벌이는 형국이다.

이념과 가치에 따라 정당이 경쟁하고 투쟁하는 게 아니라, 그저 정권을 잡은 자와 그를 빼앗긴 자 사이의 복수와 설욕만 남아 정치판을 진영논리의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만든다.

'조만대장경'이란 신조어가 나오고, '문적문'이니 '추적추'니 하며 여권 인사들의 과거 발언이 소환돼 야권의 '미러링(mirroring) 비판'의 소재로 쓰이는 한심한 작태가 5년·10년·20년 뒤에도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한편에선 대통령의 퇴임 후 보신(保身)에 신경을 쏟아야 하고, 다른 한편에선 전 정권을 구원(仇怨)으로 몰아 보복하려는 행태가 되풀이될수록, 그들이 밥먹듯 내뱉는 '민생' '협치'란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로 떠돌 수밖에 없다.

내가 하면 '소신'이고, 남이 하면 '배신'이 되는 시대다. 정치인(Politician)은 실종되고 정치꾼(politico)은 차고 넘친다. 국민만 호구(虎口) 되는 이런 시대적 비극을 끝낼 지도자가 존재할까. / 김정우 기자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

채널구독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