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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통령의 용기

등록 2021.01.04 21:53

수정 2021.01.04 22:08

"내 양심은 내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워터게이트의) 악몽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포드 미국 대통령은 전임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지 한 달만에 사면했습니다.

포드의 지지율은 하룻밤 새 71퍼센트에서 49퍼센트로 추락했고, 2년 뒤 재선에 실패했습니다.

포드는 닉슨 사면으로 자신이 치를 대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면에 앞서 닉슨에게 공식 참회성명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닉슨이 버티자 이렇게 푸념했지요.

"내가 아주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는데도 닉슨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심했고 결행했습니다. 포드의 용기로 미국은, 대통령이 재임 중 사건으로 기소된 적이 없는 국가로 남았습니다.

대통령학 권위자 그리핀 교수는 미국의 정치전통 중에 가장 중요한 사례로 닉슨 사면을 꼽았습니다. "대통령은 과거를 돌아보며 정쟁을 벌일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에 쏘아올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이 이틀 만에 유야무야 되는 분위기입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민주당 열성 지지층의 강력한 반발 때문입니다.

당사자의 반성과 사과 없는 사면 논의는 있을 수 없다는 반발에 부딪혀 이 대표와 민주당이 사면 논의를 멈추기로 한 겁니다.

이 대표는 사면을 제안하면서 "국민 통합을 위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사흘 벌어진 논란은, 이 이슈가 지닌 폭발력과 함께, 복잡하게 깔린 정치적 배경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야당은 사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서울-부산 선거를 앞두고 야권 분열을 노린다"거나 "여론 떠보기" 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권에서는 대체로 "시기와 내용에서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어느 지지자는 "대선 때 써야 할 사면 카드를 이 대표가 써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치적 계산이야 어떻든, 이제는 팔순과 칠순에 접어든 두 전직 대통령이 길게는 4년 가까이 갇혀 있는 현실을 진지하게 돌아볼 때가 됐습니다.

이 문제는 이번에도 입증됐듯이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또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것도, 풀어 주는 것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대통령의 운명일 겁니다.

포드 대통령은 닉슨 사면 10년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정적인 정치 파장과, 긍정적인 국가 이익을 비교해 따져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 하는 일입니다"

1월 4일 앵커의 시선은 '대통령의 용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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