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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나라곳간이 위험한 이유

등록 2021.01.28 14:38

수정 2021.01.28 14:53

[취재후 Talk]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나라곳간이 위험한 이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조선일보DB

"2023년부터 빚을 갚아나가겠습니다."

2020년 12월 5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국민 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독일은 2019년까지 6년 연속 국가재정이 흑자였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2180억 유로(약 293조 5,958억 원)의 빚을 냈습니다. 이 빚을 2023년부터 갚아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국민들 앞에서 나라빚이 늘어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솔직담백하게 잘 설명했다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지난해 4차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하면서 나라빚이 늘었지만 아직 이 빚을 어떻게 갚아나갈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경기가 살아나 세금 수입이 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증세를 해야하는데, 이런 논의는 하지 못하고 '재정을 더 쓰자'는 얘기만 넘쳐납니다. 지금부터 재정건전성 강화방안을 꾸려야 합니다.

 

[취재후 Talk]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나라곳간이 위험한 이유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빈 가게 / 조선일보DB


■ 벼랑 끝에 몰린 국가재정

최근 정치권에선 '자영업자 손실보상제'가 이슈였습니다. 정부의 영업제한 지침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법제화하자는 내용입니다. 여러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재원조달방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법안이 있는데, 적게는 월 1조 원에서 많게는 월 24조 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후 재원문제가 제기되자 단순히 적자국채를 더 찍자거나 다른 예산을 가져오자는 수준의 대안을 내놨습니다.

여기에다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국가재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하다며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국제통화기금, IMF가 우리 정부와 연례협의를 가졌는데, 이 지사가 반길 내용이 나왔습니다. "한국이 코로나19로 심각하게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선별적인 지출을 늘릴 여지가 있다"고 한 겁니다.

사방에서 국가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달려들면서 나라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취재후 Talk]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나라곳간이 위험한 이유
OECD 국가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2019년 기준) / OECD DATA


■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양호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 공개된 2019년 기준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그리스로 200.2%를 기록했습니다.이탈리아,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도 100%를 넘었고, 코로나19로 재정지출을 더 늘렸기 때문에 지난해 수치는 더 올라갈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2019년 채무비율이 37.2%로,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43.9%로 돌파하면서 그 동안 채무비율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40%선이 깨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재후 Talk]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나라곳간이 위험한 이유
쌓여가는 나라빚 / 그래픽 양인성


■ 나라빚 증가속도가 빠르다

그러면 재정이 얼마나 빨리 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4년엔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4.1%였는데, 2017년 36.0%로 1.9%포인트가 올랐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채무비율 36.0%로 출범해서 2020년 43.9%로 7.9%포인트가 올랐습니다. 4배 넘게 빠른 속도입니다.

올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는 46.7%, 2022년엔 50.9%, 2023년엔 54.6%, 2024년엔 58.3%입니다. 국가채무도 올해 945조 원, 2022년엔 1070조 3000억 원, 2023년엔 1196조 3000억 원, 2024년엔 1327조 원으로 전망됩니다. 우리 재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이런 점을 고려해 재정이 늘어나는 속도를 법으로 제한할 수 있는 재정준칙을 만들었지만 국회에 멈춰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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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산부인과 신생아실 / 조선일보DB


■ 우리의 재정 리스크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만이 안고 있는 재정소요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고령화입니다. 초고령사회로 진입(65세 이상 인구가 20%)하는데 미국은 40년, 일본이 12년 걸렸는데 우리는 8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매년 복지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두번째는 인구 리스크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어 인구가 자연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정부는 저출산에 2016년부터 5년 동안 150조 원을 썼는데, 이제 인구감소 충격을 완화하는데 이 돈을 써야할지도 모릅니다. 세번째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통일문제입니다.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던 독일은 통일 후 GDP대비 채무비율이 20% 가량 상승했습니다. 이를 감안할 때 우리도 20% 전후의 채무비율 여분을 남겨둬야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기에 저성장과 이어 다가온 코로나19로 앞으로의 재정지출 소요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이 양호하다고 해도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 쉽지 않은 증세

그렇다고 재정을 쌓아둘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면 경제에 일부 긍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후 소비와 수출도 늘어나면 흔히 말하는 경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꼭 이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건 최근 우리 경제를 볼 때 증명됐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국가는 부채를 상환해야합니다.

이럴 때 정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습니다. 재정지출을 구조조정해서 마른 수건 짜듯이 예산을 마련하거나 세원을 잡히지 않던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키거나 기존 예산의 우선순위를 바꿔 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어서 재정을 건전화시키는 큰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논의할 수 있는데 바로 증세입니다. 국가의 빚을 국민들이 갚는 것이죠. 하지만 보편적인 증세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세금이 오르는 것에는 국민 반발이 따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면밀한 세제검토와 사회적 합의, 효과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따라야 합니다.

보통은 정책추진동력이 강한 정권 초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정치시계를 보면 곧 재보선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선 증세를 반대할 것이고, 내년 3월엔 20대 대선이 있기 때문에 또 증세논의를 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취재후 Talk] '덮어놓고 쓰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나라곳간이 위험한 이유
지난해 10월 재정준칙을 발표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연합뉴스


■ 빌려쓰는 국가재정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2일 페이스북에서 "과도한 국가 채무는 우리 아이들 세대의 부담이고, 가능하다면 재정 여력을 조금이라도 축적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안"이라고 썼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빌려온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재정을 앞뒤 가리지 않고 쓰다간 결국 후손들에게 빚의 덫에 갇혀 신음하는 재정을 물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당장의 필요에 재정건전성을 후순위로 미뤄놓은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혹시나 국가재정을 일단 가져다 쓰고 보자는 사람들에게 메르켈 독일 총리의 말을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런 수준의 재정 지원을 끝없이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향후 수년간 예산정책과 관련해 엄청난 도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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