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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Talk] 검찰은 왜 공식기록에 "조국·임종석 범행, 강한 의심"이라 남겼나?

등록 2021.04.16 09:00

[취재후 Talk] 검찰은 왜 공식기록에 '조국·임종석 범행, 강한 의심'이라 남겼나?

조국 전 법무장관 / 조선일보DB

■ "범행 의심되지만 증거 부족"…사실상 수사 실패 인정한 검찰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권상대 부장검사)는 지난 9일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이진석 대통령국정상황실장 등 3명을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정작 법조 기자들의 이목을 끈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법무장관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불기소 처분했다는 점이다.

중앙지검 전문 공보관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지난 2020년 1월 검찰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등 송철호 울산시장과 함께 청와대 비서관들을 무더기로 기소하면서 내놓은 공소장엔 조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이 개입한 정황이 적시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브리핑 내내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윗선으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공보관은 "일부 관여가 의심되는 정황들이 사안별로 없지는 않았다.

다만 공모관계를 입증할 만큼 증거가 충분히 확인되지는 않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사흘 뒤 검찰이 발송한 조 전 장관 등에 대한 불기소 결정서엔 더 강한 표현이 실렸다.

<중앙지검 불기소 결정서 中>
"피의자들이 순차 의사 전달을 통하여 본건 범행에 가담하였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중략) 현재까지 확인 가능했던 증거나 정황들만으로는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하기 부족하다."

사실상 수사팀이 혐의 입증에 실패했단 걸 이실직고한 셈이다.

검찰이 자존심을 구기면서까지 이렇게 공식기록에 '범행 가담이 의심된다'고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후 Talk] 검찰은 왜 공식기록에 '조국·임종석 범행, 강한 의심'이라 남겼나?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 조선일보DB


■ '윗선 개입' 철저히 부인한 피의자들


피의자 조국이란 이름은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과 관련해 등장한다.

송철호 캠프의 청탁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나서서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관련 범죄첩보를 생산해 울산지방경찰청으로 내려보냈고, '하명수사'가 시작됐다는 거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2020년 1월 송철호 시장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1차 기소 후 검찰은 윗선 수사에 나섰지만 조 전 장관 관련 진술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백 전 비서관 등 핵심 피의자들은 '조 전 장관에게 보고한 적 없다'고 답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이름은 '임종석은 내 친구'라고 소개한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입에서 나왔다.

송철호 울산시장과 공천 후보 경쟁을 펼쳤던 임 전 최고위원은 2019년 12월 "임종석 비서실장이 자리를 제안했다"고 언론과 검찰에 말했다.

하지만 송철호 시장과 송병기 부시장 그리고 한병도 정무수석 등은 임 전 실장과 '임동호 자리 제공'에 대해 논의한 사실이 없다며 윗선 개입을 부인했다.

 

[취재후 Talk] 검찰은 왜 공식기록에 '조국·임종석 범행, 강한 의심'이라 남겼나?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 조선일보DB

 
■ 압수수색 거부당한 檢 수사 한계…법조계 "의도적으로 기록에 남긴 것"

법조계 관계자들은 기소하지 않은 이유를 설득력 있게 써야 하는 불기소 결정서에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는 문장을 남기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김학의 사건'처럼 두고두고 재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는 사안"이라면서 "수사팀 또한 이를 의식하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혐의 입증에 실패했단 걸 공식 기록에 남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훗날 '부실 수사'를 이유로 책임 추궁이 들어왔을 때 수사팀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필요했단 거다.

실제로 수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20년 1월 10일 검찰은 청와대 자치발전비서관실(옛 균형발전비서관실) 압수 수색을 시도했으나, 청와대는 이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중간 간부 인사에서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은 지방으로 보내고 파견검사 3명을 복귀시키는 등 수사팀을 공중분해 시키기도 했다.

검찰 안팎에선 법원이 공무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살필 때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수사의 난이도 자체가 올라갔단 이야기도 나온다.

범행이 의심되는 정황을 다수 발견하더라도 관련자 진술이나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강제수사를 시작할 수 조차 없단 거다.

다만 중앙지검 측에 조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을 상대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등이 기각당한 사실이 있냐고 물었지만 "구체적인 수사 경과 등은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 "윗선 개입 없었다"는 진술…믿지 못하는 검찰

대부분의 사건 관계인들이 조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이 연루돼 있단 의혹을 부인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고 있다. "보고한 적 없다"는 피의자들의 진술은 검찰이 확인한 일부 사실 관계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은 조 전 장관이 '하명수사'를 인지하고 있었단 정황은 확인한 바 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이 '김기현 표적수사' 건과 관련해 6.13 지방선거 이전까지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 등에 구체적인 수사상황을 총 18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보고했다.

심지어 경찰은 2018년 12월 3일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보고하기도 했는데, 이는 조 전 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검찰이 확보한 핵심 증거물인 송병기 부시장의 업무수첩엔 임 전 위원을 회유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이를 차곡차곡 실행한 정황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해 임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정황증거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공교로운 사실 관계도 이번 불기소 처분서를 통해 공개됐다.

송 시장은 2017년 2017년 10월 임 전 최고위원에게 '당내 경선에 불출마하면 원하는 자리를 챙겨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청와대에서 임 전 실장을 만난 직후였다.

 

[취재후 Talk] 검찰은 왜 공식기록에 '조국·임종석 범행, 강한 의심'이라 남겼나?
/ 조국 전 법무장관 SNS 캡처


■"입증할 수 있겠나"…그대로 실현된 임종석의 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다음날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SNS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

임 전 실장은 "이른바 '울산 사건'은 명백히 의도적으로 기획된 사건이며 그 책임 당사자는 윤석열 전 총장"이라며 "재판을 통해 이진석의 결백함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울산 선거개입' 조국-임종석-이광철 무혐의 처분〉이란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이제서야"라고 썼다.

사실 임 전 실장은 지난해부터 불기소 처분을 예상한 듯하다.

2020년 1월 30일 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스스로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임 전 실장은 "정말 내가 울산지방 선거에 개입했다고 입증 할 수 있느냐"고 검찰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15개월이 지난 지금, 검찰은 임 전 실장의 말대로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 최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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