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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5·18은 '루머와의 투쟁사'

등록 2013.05.22 22:27 / 수정 2013.05.2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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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잊어서는 안되지만 잊고만 싶은 가슴 아픈 사건이 있습니다. 33년전 5월 광주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각종 루머와의 전쟁을 거쳤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광주가 봉쇄되면서 피해자 측에서 나온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퍼졌고 최근에는 탈북자들로부터 흘러나온 주장들이 확대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광주가 겪은 어쩌면 지금도 겪고 있는 ‘루머와의 전쟁’을 이재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80년 광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착되기까지 각종 루머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습니다. 초기에는 피해자 입장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루머가 광주에서 2천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은 '2천명설'은 외신보도가 국내로 들어와 낭설로 떠돌았다고 증언합니다.

일부 언론도 '2천명설'을 보도했지만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서울지검은 사망자가 193명이라고 발표했고, 5·18 기념재단이 현재 보상 현황에서 밝힌 사망자는 154명입니다.

뜬소문이 많이 나온 이유는 당시 광주가 외부와 단절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을 죽이러 왔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7공수여단은 40%가 호남 출신이었습니다.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화염방사기로 시위대를 사살했다는 루머도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조남준 /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기자
"이상한 소리 퍼뜨리고. 2천명이 죽었네, 3천명이 죽었네. 그 사람들이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죠. 북한 방송 보면 그렇게 돼 있어."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계엄군부터 1995년 검찰의 조사까지 모두 5차례의 조사를 통해 상당 수의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하지만 최근 탈북자들이 북한과 관련한 주장을 하면서 새로운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군 대대 병력 투입설이 대표적입니다. 사건 초기에도 북한군 개입설이 신군부의 입장에서 제기되기도 했지만, 근거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탈북자 증언 형태로 개입설이 주장되지만, 이런 루머도 언론 취재와 증거확보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근거없는 소문을 악의적으로 퍼뜨리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확대 재생산하는 부분입니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되면 근거없고 증거없는 루머는 사그라들 것으로 보입니다.

TV조선 이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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