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총을 든 극좌' 日 적군파의 몰락

등록 2013.09.0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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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보면 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까지 할수 있는지를 엿볼수 있습니다. 6,70년 대 일본에서 맹렬한 기세를 떨쳤던 극좌 학생 운동의 몰락이 떠오릅니다. 왜 도쿄대에는 68학번이 없는지, 왜 일본 적군파는 사상에 문제가 있다면서 동료들을 죽였는지.

김지아 기자입니다.

[리포트]
1969년 1월 도쿄대 야스다 강당. 반년째 강당을 점거한 학생을 해산시키려고 경찰 8천5백명이 투입됐습니다. 이틀 간 충돌하다 강당이 불탔고 전공투 학생 631명이 체포됐습니다.

도쿄대는 그해 입시도 중단했습니다. 미국에 반대하고, 도쿄대는 제국주의 상징이라던 전공투는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대중 동원이 불가능하자 소수의 무장투쟁으로 체제를 뒤집자는 적군파가 등장했습니다.

4백명 정도였던 적군파 일부는 1970년,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해 평양으로 갔고, 지금도 북한에 납치범 4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돕는다며 이스라엘 공항에 총을 난사해 25명이 숨졌습니다.

지금 테러조직이 벌이는 자살 공격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일본에 있던 적군파는 산장에서 합숙하며 군사훈련을 했습니다. 경찰에 총을 쏘며 맞서다 진압됐습니다.

이들은 사상에 문제가 있다며 동료 14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념의 광기에 총을 든 학생운동 세력은 자신들끼리 죽이며 종말을 맞았습니다. 적군파를 만든 시게노부 후사코는 20년 넘게 도피 생활을 하다가 지난 2천년 체포돼 징역 20년형을 받았습니다.

TV조선 김지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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