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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윤정호 앵커칼럼] 최순실과 단두대

등록 2017.01.17 20:33 / 수정 2017.01.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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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가 독일에서 돌아온 날, 변호인이 기자들에게 말합니다.

이경재 / 최순실 씨 변호인 
"본인(최순실)은 수사에 응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온 것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이게 (단두대에 올라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인이 의뢰인을 가리켜 단두대같이 섬뜩한 말을 해도 되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최씨가 헌재에서 한 언행을 보면 벌받을 각오는 애초에 없었던 게 분명합니다. "모른다"를 백서른번, "기억 안 난다"를 쉰번, "아니다"를 서른번 넘게 했습니다. 역대 비리 수사에서 최악의 '모르쇠'로 꼽히는 정태수 한보 회장을 능가합니다. 

정 회장을 조사했던 검사들은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같은 날 정 회장은 법정에, 아들은 청문회에 서기도 했습니다. 정 회장은 "검사도 사업 한번 해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최씨가 어제 "증거 있느냐"며 코웃음 친 것과 닮았습니다. 

아들도 모르쇠로 일관해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선 "자애롭고 누구도 못 따를 영감을 지닌 최고 사업가"라고 칭송합니다. 최씨가 어제 박 대통령을 평한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심이 없고 굉장히 청렴하신 분이다." 구치소 청문회에서 “대통령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최씨는 "대통령이 검찰에 엮이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도 말합니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 "완전히 엮은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헌재와 특검에 대응해 전략적으로 입과 발을 맞춘 티가 역력합니다. 

반면 오늘 법정에서 최순실-장시호씨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모는 혐의를 부인했고, 조카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공범들이 서로 배신자라고 의심해 죄를 털어놓는 ‘죄수의 딜레마’가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딸밖에 모르는 최씨를 보며 많은 이들이 "이런 여자에게 나라가 휘둘렸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어제 오늘 최씨를 보면 나라를 흔들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찰이 다 뒤집어씌운다" "내 딸이 언론 때문에 상처받고 인생이 저리 됐다" "너무 과장돼 내가 완전히 괴물이 됐다…" 단두대의 의미가 비로소 분명해집니다. 최씨는 자기가 단두대에 끌려 올라와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앵커칼럼 '최순실과 단두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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