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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정호 앵커칼럼] 반기문의 도량

등록 2017.01.20 20:26 / 수정 2017.01.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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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때 부시 후보 유세장입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를 발견한 부시가 러닝메이트 체니에게 말합니다. 

2000년 美 대선 부시 후보 유세장
("저기 메이저리그급 머저리(asshole)가 왔네.") "맞아, 일만 저지르고 다니는 놈이지." 

마이크가 켜 있는 줄도 모르고 한 욕설이 유세장에 울려 퍼집니다. 주워담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 자문위원단과 함께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사진 촬영 시간인데도 기자들의 성가신 질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짜증이 난 레이건이 고개를 돌려 중얼거립니다. "개자식들(Sons of bitches)." 욕설은 마이크를 타고 기자실로 전해집니다.

맞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기자는 지겨운 존재입니다. 눈에 든 티끌, 소 등에 앉은 쇠파리입니다.

반기문 전 총장이 기자간담회를 하고 나오다 대변인에게 푸념합니다. “내가 마치 역사의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나쁜 놈들.” 기자가 뒤에 따라오는 것도 모르고 내뱉었다가 기자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녹음됩니다.

다들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녹음되는 줄 모르고 한 실수라고 변명합니다. 하지만 반듯한 공식 발언보다, 무심코 한 실언에 진심은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정치 초년생 반 전 총장의 말과 표정이 요즘 말로 까칠합니다. 악의적 왜곡과 날 선 공격이 이어지고, 마음은 급한데 지지율은 안 오르고… 지난 10년 유엔 수장으로, 가는 곳마다 대접받고 덕담 듣다가 신경이 곤두설 만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정치판입니다. 이제 고작 일주일인데, 앞으론 훨씬 더 거친 일들이 닥칠 겁니다.

레이건에게서 "개자식"이라고 욕먹은 기자들이 반격에 나섭니다. '개자식'의 약칭 'SOB'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백악관에 드나듭니다. 며칠 뒤 레이건도 'SOB' 티셔츠를 기자들에게 펴 보입니다. 그런데 셔츠에 ‘예산을 절감하자'는 엉뚱한 뜻풀이가 쓰여 있습니다. 기자들은 폭소와 갈채를 터뜨리며 완패를 인정합니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자'라는 별명답게 유머로 적의를 누그러뜨렸습니다. 지금 반 전 총장에겐 그런 여유와 아량, 금도가 아쉽습니다.

앵커칼럼 ‘반기문의 도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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